아파서 좋은 점

퇴원 후

by Naesu

그렇게 대단한 병도 아니지만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오니 달라진 점이 있다.


남편이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야참의 잔해들이 있었다. 설거지 거리가 싱크대에만 들어 있어도 다행이다.

식탁도 양호한 편이다. 소파나 TV 앞에, 때로는 방바닥에 있기도 했다.

편안히 잘 자고 일어나서 짜증 내는 데 탕진되는 에너지가 아까워서 무념무상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쉽게 될 리 가 있나. 불쾌한 감정은 비슷한 종류의 생각을 하나씩 연달아 물고 나온다.

그렇게 아이가 학교 가는 시간을 맞추고 시작하던 나의 아침이

퇴원 후에는 구수한 누룽지 냄새로 시작한다.


가마솥 같이 구수한 누룽지가 된다는 광고를 보고 구입한 미니 사이즈 압력 밥솥에

남편이 밤마다 밥을 해서 누룽지를 만들어 둔다. 나의 아침 간식이다. 고맙다.

병원 다녀오면서 입맛이 덜해진 나를 위해서 손수 밥을 짓고 시간을 들여서 누룽지를 만들어 둔다.


작고 반짝거리는 것도 명풍 가방은 살 능력도 안되지만 그냥 나는 원래부터 관심이 별로 없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서 따뜻한 차 한잔을 침실로 배달해 주는 일,

결혼 전 나의 로망은 그런 정도였는데, 무심한 남편은 매우 일괄되게 그런 다정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었다.

입원하길 잘 했던 건지, 압력 밥솥 사기를 잘한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설거지도 자주 한다. 누룽지와 설거지 그렇게 나는 남편의 사랑을 느낀다.

아파서 감사한 일 첫 번째는 여기까지.


내가 달라졌다.

식도 점막하 종양을 수술도 아니고 시술로 제거한 거지만

소화기 쪽 환자들은 모두 식음을 전폐하는 일이 입원 기간 대부분 지속된다.

위내시경만 받아도 금식이니, 각종 검사가 이어지는 만큼

입으로 음식을 넘기는 일이 아주 귀하다.

시술 전후로는 2~3일 물도 주지 않는다. 이때가 제일 힘들다.

그래서 남편을 좀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은 3년 차 혈액암 환자다. 정확히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및 재생불량성 빈혈이다.

발병 초기에는 주 2~3회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집에 있다 보니, 환자라는 걸 자꾸 까먹는다.

근데 내가 병원에서 환자 역할에 충실하고 나오니,

남편이 짠하다.

약 먹기가 괴로워서 미루는 남편이 그렇게도 철없어 보였는데,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약 안 먹어서 의료진한테 혼나 보고 나니까 좀 알겠다.

좀 더 다정하게 약 먹으라고 할 걸 그랬다.

안쓰럽다. 측은하다.


잠깐 보면 멀쩡해 보이는 남편이

애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맙다.



세번째 좋은 점


딸아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는 엄마 아빠가 다 환자여도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당당함이 고맙다. 계속 씩씩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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