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버디, 네이트온, 싸이월드, 그리고 각종 온라인 게임을 거쳐온 세대라면 응당 발달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 바로 '타자' 능력이다. 능력이라고 칭할만한 것이, 초등학교 컴퓨터 시간에 한 번씩 열리는 번외 경기(누가 누가 타수가 높은가)에서 마치 손가락에 자아가 있는 것처럼 키보드를 가지고 노는 친구들을 보며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버디버디, 네이트온, 싸이월드 그 어느 것에도 흥미가 없던 나는 도통 키보드 채팅을 칠 일이 없었고, 그나마 컴퓨터로 게임을 했지만 타자가 느리니 채팅을 치지 않고 게임만 했다. 게임 중 발칙한 친구들에게 가끔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채팅을 받으면 반격을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독수리스럽게) 채팅을 쳤지만 보통 엔터를 누르기 전 게임 화면이 넘어가거나 그 친구가 이미 사라져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생존타자'를 구사하는 편이다. 생존타자는 방금 내가 만들어 낸 말이다. 과제도 해야 하고 회사 생활도 해야 하니 타자가 조금 빨라지기는 했는데, 어릴 때 풀어주지 않은 손가락이 굳어버린 건지 드라마틱하게 늘지는 않았다. 제일 큰 문제는 키보드 자리를 외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충 'ㅇ'이 이쯤에 있고 'ㅑ'가 이쯤 있겠구나 하는 느낌은 아는데 정확성이 많이 떨어지는 데다가 손가락을 올바르게 활용하지 않고 되는대로 아무 손가락으로나 누르곤 한다. 타수는 꽤 빠른데 키보드를 자주 쳐다봐야 하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눈의 피로도는 높아진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사무직이 아니다 보니 이런 상태로 어찌어찌 별문제 없이 살아왔다. 그러다 최근 주말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무려 전산입력(!!)을 하는 사무 업무이다. 집과 가깝고 시급이 높아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해 봤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면접 당시 '키보드 자리를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인가요?'란 말이 목 끝까지 찼지만 돈을 벌어야 하기에 자제했다.
일한 지 3주쯤 지났는데, 긴 글을 칠 일이 많지 않아 타자가 아주 빠르지 않아도 괜찮지만 키보드를 자주 봐야 하는 건 역시 불편함이 있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영문을 칠 일이 많아 속도는 더 더뎠다.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광란의 키보드 소리(스포츠에 타자 종목이 있다면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지역 대표 한 명 정도는 출전할 수 있을 것 같다)와 나의 둔탁한 키보드 소리가 대조되며 '특훈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한컴타자 맹연습을 하게 된다. 요즘은 한컴타자가 홈페이지로 나와서 접속하기 편하고 게임도 요즘식(?)으로 바뀌어서 꽤나 재미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알게 모르게 타자 능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타자가 느린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고, 자신이 없으니 키보드 만지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타자를 (열라) 빠르게 쳐야 하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오히려 좋아의 마음으로 부딪치려 한다.
+오랜만에 향수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시길ㅎㅎ (홍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