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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공 May 15. 2024

3개월에 한 번, 미용실 다이어트

"나보고 어떡하라고 지금까지 계속 숱을 쳤는데..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어!"


이 대사는 나의 단골 미용실 디자이너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주,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몇 년째 이용 중인 미용실에 갔고 쌤은 능숙하게 나의 머리를 매만졌다. 내가 미용실에 가는 목적의 최우선 순위는 바로 '숱 치기'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쌤이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물으시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우선 숱을 왕창 쳐주세요. 반 절 정도 날려주세요."   


흔히 OO수저라 부르는 것들. 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부모님이 가게를 운영하시는 것도 아니고 특출 난 재능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선천적으로 월등한(?) 부분이 있으니 그게 바로 메가급으로 풍성한 머리숱이다. 근데 이제 반곱슬을 곁들인.


고등학교 때까지도 나에게 (반곱슬을 곁들인) 나의 머리카락이란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귀찮은 존재 딱 그 정도였다. 머리 말리는 데 한세월 걸리고, 지저분해 보이고, 손질을 위해 시간과 돈이 많이 투자해야 하는 돈 먹는 하마. 그래서 나는 윤기 있게 찰랑거리는 곧게 펴진 생머리를 늘 동경해 왔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머리숱에 관한 생각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는데, 이런 대화를 통해서이다.


"와 OO이 머리숱 진짜 많다."

"응 나 머리숱 진짜 많아. 완전 스트레스야."

"머리숱 많은 게 좋은 거지!! 적어서 없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나아."

"아 그래? 근데 나는 너무 과해서 좀 줄었으면 좋겠어."

"나는 부럽다 야. 좀 많으면 좋을 거 같은데."

"우리 둘이 반씩 섞어서 나누면 좋겠다."


마치 오빠 없는 친구가 오빠 있는 친구를 부러워하고, 오빠 있는 친구는 그럼 제발 네가 좀 데려가라며 서로를 부러워하는 상대적 부러움 이론(방금 지어낸 말이다)이 머리숱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머리숱 블렌딩 AI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답이 없을 대화를 몇 번 하고 나서 보니, 머리숱 많은 게 나한테나 스트레스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영구적으로 없애버릴 수 없다면 좋게 생각하고 인생의 동반자로 잘 품고 갈 수밖에.


이 무한 증식하는 머리카락을 다스리려면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씩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손질해야 한다. 더 자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미용실은 너무 비싸고 귀찮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가꾸며 기분 전환을 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 미용실이란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때 겨우 예약을 하는 그런 곳이다.


숱을 한 번 치면 과장 조금 보태서 유치원생 한 명 머리카락 분량이 내 머리에서 빠져나온다. 그렇게 쳐내도 여전히 내 머리숱은 건재하다. 이번 방문 때도 역시 디자이너 쌤은 손목이 부서져라 나의 숱을 쳐내주었다. 의 머리숱을 정상의 괘도에 넣어주겠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한참을 가위질하다 중간점검으로 내 머리를 크게 몇 번 쥐어보셨다.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다며 울부짖으신다. 우리는 동시에 깔깔 웃었고, 쌤은 2차전을 시작하신다. 정말 지긋지긋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머리카락들아 이번에는 좀 천천히 자라나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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