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을 채 보내지 못하고 26년 속에 들어왔다

by 다공

나에게 올해, 그러니까 이제는 작년이라고 불러야 하는 2025년도의 끝자락은 유난히 연말 느낌이 나지 않았다. 25년도의 시작점에서 다짐했던 목표 중 상당수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어쩌면 덜 추워진 겨울 날씨가 계절을 제대로 감각하게 하지 못한 걸 수도, 아니면 그저 크리스마스 캐럴을 충분히 듣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12월 31일이 이미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새해의 첫 주말을 맞이한다. 크리스마스는 손바닥만 한 트리를 간단히 꾸미는 것으로 넘어갔다. 몇 년 전만 해도 연말 무대를 보다가 화면 속 연예인들과 함께 맞이하는 새해 카운트다운이 익숙했는데, 올해는 남자친구와 통화하며 네이버 초시계를 이용해 조용히 둘만의 카운트다운을 셌다. 아직까지 새해가 되었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은 날짜를 쓸 때 무의식에 '25'까지 썼다가 재빨리 '26'으로 고쳐 쓰는 경우 정도이다.


빠른 년생에다가, 재작년 변경된 나이 제도로 인해 꽁으로 2살 정도의 해택을 얻은 기분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약국 봉투에도 앞자리가 3으로 찍히는 나이. 스무 살 중반까지만 해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감각도 없으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은근슬쩍 이십 대 후반 카테고리에 묶이기 시작하는 스물여섯과 아홉수 어쩌구로 각종 압박을 받는 스물아홉을 지나 이제 진짜 서른이 된 것이다.


김광석 씨는 어떻게 '서른 즈음에'라는 곡을 쓴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사회적 연령 주기가 바뀌어 그 시절의 어른과 현시대 어른의 모습이 많이 다르기는 하다지만, 김광석 씨의 감성이나 한때 지금의 내 나이였던 엄마 아빠의 일생을 가늠해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친구와 고등학생처럼 유치한 대화를 나누며 낄낄 웃고, 코인노래방에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고, 건강식보다는 두바이쫀득쿠키쪽에 구미가 더 당기는 사람이 서른 살이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들어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그래도 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여 머리가 더 어지러워진다. 아마 앞으로 남은 여생도 마흔 살이 이래도 되나, 쉰 살이 이래도 되나 하며 버퍼링 걸린 채 살아갈 것 겉만 같은 이 느낌...


그래도 지금의 나는 떠나가는 이십 대에 대한 미련보다, 이제 내 것이 된 삼십 대라는 나이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책임감이 심한 부담감이나 불안으로 변해 스스로 발목을 붙잡지 않도록 잘 다루어야 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일 것이다.


올해 첫 곡으로 조유리의 'Blank'라는 곡을 들었다. 시중에 '다 거야.', '행운이 가득할 거야.'라는 메시지를 가득 주는 노래들이 넘쳐나고, 물론 그런 노래들도 참 좋지만, 그것보다는 '보기에 정답은 없으니 삐뚤빼뚤해도, 틀려도 그저 나를 나대로 두고 킵고잉 하면 빛 나는 순간이 온다'는 그 메시지가 지금의 나에게는 참 와닿았다.


얼레벌레 맞이해 버린 새해. 이 글에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게시함으로써, 드디어 새해가 되었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 하나 늘어난다. 아직 25년을 완벽히 떠나보내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 다가오는 한 해 한 해가 반갑기도 하면서 어쩐지 겸연쩍기도 한 모두가, 삐뚤빼뚤해도 킵고잉 하는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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