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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공 Oct 24. 2023

실은 닭발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취 후 새롭게 알게 된 나의 식성

혼자 산다는 건 일상의 많은 부분들을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블라인드와 커튼 중 어느 것으로 창을 가릴 것인지, 침대를 세로 방향으로 배치할 것인지, 화장실 청소의 주기를 대략 얼마로 할 것인지 등등.. 크고 중요한 문제부터 아주 사소한 문제들까지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 중 가장 일상적인 것을 꼽자면 바로 먹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우선 장보기 및 음식 만들기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가끔 요리를 하더라도 가족 구성원들의 식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살게 된 지금은 식재료를 구입하는 것, 메뉴를 짜는 것, 간을 맞추는 것, 식사 시간과 텀을 정하는 것까지 한 사람의 취향(및 통장잔고 상황)만 고려하면 된다. 오로지 나의 여건과 취향에 맞춰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집 식탁은 쌀밥, 국, 몇 가지 반찬들로 이루어졌고 나 또한 그런 구성에 익숙해져 왔다. 자취 극초반에는 본가에서 가져온 반찬들과 김치를 이용해 비슷한 구성을 흉내 내어 끼니를 챙겨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PT를 시작하게 되었고 인생 처음으로 운동하는 사람의 식단이란 걸 경험해 봤다. 

그때까지 난 닭가슴살을 전문적이고 비범한 몸짱들만 즐겨 먹는 음식인 걸로 여겼다. 그런 내가 하루 한 끼 정도는 닭가슴살, 채소, 과일, 고구마, 계란 등을 조합해 클린하게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며 느낀 점은 밥과 국이 없는 간단한 식단이 나에게 꽤나 잘 맞는다는 것이다. 짜고 매운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특히 매운 음식에 취약하다는 건 자취를 하고 나서야 명확히 깨달았다. 


본인이 참깨라면에도 매워하는 중증 맵찔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그전에는 알지 못했을까? 


여고생의 소울푸드 떡볶이. 여자의 소울푸드 매운 닭발. 한국인의 소울푸드 불닭볶음면...

주위에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했다. 

여자인 친구들은 방과 후에 자주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고 엽떡 오리지널 맛 미만은 취급하지 않았다. 스물 초반 친구들 모임에서는 한신포차에서 국물닭발과 옛날통닭을 안주로 두고 소주를 적시는 게 국룰이었다. 불닭공화국에 살며 자연스럽게 불닭라이팅을 당한 나는 눈물콧물 흘리면서도 불닭에 참치삼김을 비벼먹곤 했다. 게다가 우리 가족들도 전체적으로 짜고 맵게 먹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유난히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이라고 의식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자취를 시작하며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나만의 식사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나의 취향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취향대로 음식을 먹으니 속은 한결 편안해지고 메뉴 선택에 있어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음식 취향을 예로 들었지만, 그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고 나와의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지금껏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나의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에 이미 잘 알고 있고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지만 사실은 종종 모르는 게 많고, 나라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에도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잘 아는 것은 왜 중요한 걸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나는 선택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과정이 있다고 본다. 


1.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2. 남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3. 선택 후 후회하지 않기    


이 중 첫 번째 단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의 평가나 사회적인 시선에 기반하여 선택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건 간단한 문장이지만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삶은 무엇보다 '나의 내면'이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상기시키고 노력할 뿐이다. 


나는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며 나와 조금씩 더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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