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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공 Nov 04. 2023

1.5평 고시원, 나의 첫 자취방

집과 함께 성장하기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돈은 없지만 자취를 시작해야 하는 스무 살 언저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면 되는 고시원이 제격이었다. 고시원을 다섯 군데는 보러 다닌 것 같다. 다 비슷해 보이는 한 줌짜리 방인데 개인 화장실 여부와 창이 복도로 나있는지 바깥으로 나있는지 등에 따라 월세가 몇만 원씩 차이 났다. 나는 방 안에 화장실이 있고 창이 야외로 나 있는(나름 상위 옵션) 고시원을 선택했다. 가격은 월 30만 원이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시원 방 사진. 강렬한 핫핑크 침구세트가 포인트이다.


1.5평짜리 방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시원에서 지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작디작은 공간에서 공부, 잠자기, 식사, 샤워, (정적인)취미활동 등 웬만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는) 있다.


물론 제약도 많다. 라면 하나 끓여 먹으려면 공용 주방의 인덕션이 비어있기를 바라며 복도로 나가야 하고, 친구들과의 홈파티는 꿈도 꿀 수 없으며, 기지개라도 개운하게 켜다가는 책상에 정강이 찍히기 딱 좋다.


고시원에 지내며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에 비해 월세가 그렇게 싸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아닌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고시원의 위치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사는 고시원은 50~60대로 보이는 중장년층도 꽤 많았다. 이곳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연들이 층마다 빼곡히 모여있었다.   


좁은 방을 쓰는 건 이미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나름 잘 버티며 지냈다. 그러다 여름이 되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더울 줄은 예상치 못했다. 천장에 에어컨이라고 달려있던 수상한 외관의 그 아이를 의심했어야 했다. 고시원 쪽에 고물 에어컨을 고쳐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아서 그해 여름은 거의 바깥에서 생활하고 방에는 잠만 자러 들어갔다.


지독했던 여름이 지나고 고시원 생활 1년 차에 가까워진 어느 날, 문득 나의 세상이 1.5평 안에 가둬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무서울 만큼 적응을 잘해서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들도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환경에 맞춰 살아간다. 이 작은 방 안에 누워있는 건 내 몸이지만, 생각과 시야 또한 그 크기에 맞춤형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작고 소중한 돈을 모아 4.5평짜리(무려 3배 크기!) 반지하 원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원룸에는 개인세탁기와 개인 주방이 있기 때문에 빨래나 요리를 할 때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여전히 샤워 후에는 변기까지 흠뻑 젖을 만큼 화장실이 작고, 여름에는 곰팡이와의 전쟁에 시달렸지만 고시원에서의 경험 덕분에 그쯤은 견딜만한 것들이 되었다.


반지하 원룸에서 1년쯤 지내다 퇴사를 하게 되어 다시 본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한 번 자취의 맛(?)을 본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 또다시 자취를 감행하게 된다.


나의 세 번째 자취방은 오피스텔 6층의 10평짜리 전세집이다. 금리가 말도 안 되게 낮은(지금은 약간 높아졌지만) 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을 받아 발품 팔며 구한 집이다. 

초창기의 무소유 주방

우리 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점은 주방이 넓다는 것이다. 늘 좁은 주방만 사용해 왔던지라 넓은 주방에 대한 깊은 바람이 있었는데 이번 집에서 그걸 충족시킬 수 있었다.(도마를 펼치고도 작업대 자리가 남다니!)


창이 너무 커서 겨울에는 더욱 춥다거나 바닥 장판에 들뜬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지나갈 때마다 바스락거린다거나(그 부분을 '바스락존'이라 칭하고 있다)하는 단점들도 더러 있지만, 이 집에 살기 전과 후의 나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본투비 집순이인 나는 집에서 혼자 정말 잘 논다. 코로나 격리 기간에도 그다지 답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이 짧다고 느던 사람이다. 그렇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반경이 넓어지고 다듬어지니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얻게 되었다.


생각의 시야를 넓히는 일에는 내가 어떤 공간에서 생활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단순히 평수가 넓고 비싼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나를 성장시키는 데 방해되지 않을 만한 공간에 나를 맡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자취를 하지 않고 나와 맞지 않 집에서 가족들과 계속 지냈더라면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일이다.


앞으로  또 어떤 집에서 생활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공간을 나에게 맞 가꾸는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불어 그 과정 속에 내가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고 생각의 시야 또한 넓어질 것이란 기대감 설레기도 한다.


'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나는 누구이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언젠가 집꾸미기 게시글에서 본 말인데 정말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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