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은그림 Nov 19. 2022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엄마의 신앙과 믿음

결혼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실질적인 가장으로 사신 엄마에게 신앙은 크나큰 위로였다.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를 처음 시작할 때 가까이 있던 교회와 성도들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고, 심적으로 외롭고 막막할 때 하나님은 엄마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 엄마는 그 한 교회만 섬기셨다.


엄마의 영향으로 여동생과 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그 시절 아빠는 교회 다니는 엄마와 우리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핍박했다. 

그래도 엄마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막내 동생은 남자라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이유로 절대 교회에 못 다니게 하셨지만, 엄마는 이미 남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빠 몰래 영아 세례를 받게 하셨다.

20세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았던 나와 여동생보다 먼저였다.          

세월이 지나고 먼저 세례를 받았던 막내 동생이 20대 후반에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을 굳힌 후 아빠를 뺀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빠를 계속 설득을 했지만 아빠는 신앙에서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온 가족 인가 귀도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셨다.     


지난 2019년 추수감사절을 목표로 교회에서 “새 생명 열매 캠페인”을 했다.

새로운 성도를 인도하는 캠페인인데, 과일 모양의 종이에 전도할 사람의 이름을 써서 '생명나무' 모형에 매달아 놓고 기도하는데, 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면 추수감사절에 그 열매를 따서 거두게 되는 행사였다.

나도 아빠 이름을 써 볼까 했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그간 우리의 노력에도 끄떡하지 않은 분이었기에 교회 입구에 서 있는 생명나무에 추수하지 못한 아빠 이름만 창피하게 달려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신청을 하셨고 결국 그 해 추수감사절에 아빠를 인도하게 되었다. 아마도 엄마가 허리 아파 교회에 다니시는 게 불편해지자 아빠가 모시고 함께 다니면서 어쩔 수 없이(?) 매주 교회에 출석하게 되신 것 같다.

어쨌거나 엄마의 ‘온 가족 하나님 앞에 인도하기’는 결국 달성하셨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방역지침과 거리두기 때문에 2년여 동안 교회를 가지 못한 채 가족 모두 집에서 영상예배를 드렸고, 그 와중에 엄마는 갑작스레 하늘나라에 가셨다.          

엄마를 하늘나라에 보내드렸지만, 매 주일 하던 데로 남은 온 가족은 매주 영상예배를 드렸다. 아빠는 예배는 드리셨지만 세례를 받지 않아 정식 교인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에 교회에서 세례 주는 행사를 하는데  2021년 성탄절에 아빠는 스스로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하얀 눈에 소복이 내려 쌓이는 날 아빠를 모시고 교회에 세례 교육을 받으러 갔다.

두 명의 목사님과 전도사님께 세례 교육을 받으신 후 아빠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받았으면 좋았을 걸 하시며 울먹이셨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엄마도 하늘에서 아빠 정말 잘했다고, 기뻐하실 거라고 말씀드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해 크리스마스 때 아빠는 정식으로 세례를 받으셨고, 엄마가 있는 추모공원에 가서 자랑하셨다. 지금은 생명나무 열매 3년 차 성도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경을 보시며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계신다.   




어려운 환경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결국 온 가족을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셨던 울 엄마. 

평생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았던 엄마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몸소 보여주셨다. 하나님을 아는 엄마를 보내주셨고, 엄마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제껏 아무 탈 없이 무난히 잘 살아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내가 잘나서? 내가 열심히 살아서? 그저 운이 좋아서?

그건 엄마가 나를 위해, 우리 가족들을 위해 늘 눈물로 기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계실 때 엄마는 늘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가까이하셨다.

내가 기도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엄마는 날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엄마가 안 계신 지금, 나 또한 엄마가 걸어온 성도의 삶을 본받아 아빠와 동생들, 우리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세상 끝날까지 온전한 크리스천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쩜 엄마에게 신앙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던 그 고마움에 대한 대가 또는 의리였는지도 모른다. 아무 연고도 없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삼 남매를 길러내면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렇기, 그렇기 컸다’고 엄마는 지난날을 회고하셨다.

교회와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며 온전히 살아오신 엄마.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엄마가 추수하신 생명나무 열매인 우리 가족은 신앙의 선배인 엄마가 너무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