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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Aug 19. 2022

엄마의 생일

주인공 없는 생일

어제는 엄마의 생일이었다.

살아계셨으면 74세의 생일을 맞이하셨겠지만 그 주인공은 하늘나라에서 쉬고 계신다.

생일이면 으레 그날 아침 새로 한 밥에 미역국으로 1차 생일상을 받고, 저녁에 본 행사를 시작한다.

가족 모두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생일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고 함께 노래하며 축하한다.

돌잔치 마냥 음식을 앞에 차려 두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이게 우리 가족들의 생일잔치 수순이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라 생각했지만 올해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정성스럽게, 더 좋은 것으로 해 드리는 건데 너무 후회되고 아쉽기만 하다. 




엄마 생일을 앞두고 며칠 전 동생과 추모함을 다시 정리했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 엄마의 추모함을 어떻게 꾸밀지 몰라 꽃이랑 엄마와 관련된 사람들의 사진만 잔뜩 넣어놨었다. 그렇게 내 슬픔만 보다가 1년이 다 되어가니 주변의 다른 추모함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어디서 구입했을까, 저렇게 해 놓으니 괜찮네' 하며 더 좋은 장식 방법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돌아가신 후 추모함을 꾸민다는 건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만족이지만 그래도 예쁘게 꾸며드리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생일 상차림과 재봉틀, 성경책, 돈다발 등 미니어처를 주문했다.

재봉틀만 썰렁하게 놓기가 그래서 작은 소품은 우리가 만들었다.

엄마의 핸드메이드 작품에 태그로 붙였던 닉네임
대바늘 뜨기 재료와 각종 천 모음과 가위를 모형으로 만들었다.

동생이 집에 있던 3D펜으로 소쿠리와 대바늘 그리고 가위 모형을 만들었는데 둘을 합치니 꽤 그럴듯했다.

처음에 꾸민 추모함은 답답했는데 새로 꾸며 놓으니 정돈되고 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엄마만의 공간을 새롭게 인테리어(?)했다.

일 년에 딱 4번 추모함을 열 수 있는데 그때마다 예쁘고 좋은 걸로 꾸며드릴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허무하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엄마의 생일날 아침엔 일찍 아빠와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생전에 가족과 함께 먹고 나누길 좋아하셨던 엄마를 기억하며 저녁에는 조촐한 생일상을 차렸다.

아빠가 미리 하루 전 시장을 봐 오셔서 음식 만들기가 수월했다.

잡채와 소고기 미역국, 떡, 편육 등 모두 엄마가 좋아한 음식들이었다.

시집간 동생도 퇴근길에 들러 저녁을 함께했다. 

처음엔 눈물 어린 식사기도로 시작해, 식사 막바지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의 피붙이들이 모여 엄마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시간이었다.







엄마,

태어나 주셔서 고마워요.

가진 거 하나 없는 아빠를 만나서 결혼해 주신 것도 고마워요.

저를 낳아주신 것도 고맙고, 착한 동생 둘이나 낳아주신 것도 고마워요.

평범하게 남들처럼 학교도 마칠 수 있게 물심양면 지원해 주셔서 고맙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묵묵히 믿어 주신 것도 고마워요.

평생을 쉬지 않고 가장으로 저희들 뒷바라지하시느라 고생하신 것도 고마워요.

풍족하진 않아도 무일푼으로 상경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모두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어요.


그리고 엄마의 신앙을 물려주신 것도 고마워요.

엄마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하나님.

신앙의 힘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어요.

나중에 엄마를 만날 소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요.

엄마 딸이어서 좋았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요.

엄마랑 함께 했던 즐거웠던 추억들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게요.


엄마,

그곳에서 편하게 쉬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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