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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Jun 22. 2024

옛날 책방

빌려보기

지금은 대형서점에 마을마다 도서관이 흔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엔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소위 잘 사는 친구들의 집엔 백과사전이나 위인 전집, 이야기 전집 등이 책꽂이에 가득했겠지만 책 살 돈이 없던 우리 집은 책이 없었다.

그런 책 불모지의 환경에서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건 엄마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몇 해 전 글을 조금씩 알게 된 나를 엄마는 동네 서점에 데려가 주셨다. 문을 열면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온통 책뿐인 신세계가 펼쳐졌다.

책꽂이와 매대에 가지런히 정돈된 각양각색의 책들과 공간에 가득한 새 책 냄새는 그 시절 어린 나에게 신선한 기억이었다.


엄마는 서점 주인에게 제안해 한 달에 얼마를 주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어떤 배짱으로 그런 거래를 하셨을까 싶다. 시골에서 상경해 서울에서 아무것도 몰랐을 엄마가 그래도 어린 나를 위해 -지금처럼 흔한 조기교육은 못 했을지언정- 보고 싶은 책은 맘껏 보게 하셨으니 이미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골라보게 하셨고 그때 난 그림책, 이야기책, 창작 동화책 등 다양한 책들을 많이 봤던 것 같다.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엔 엄마에게 책의 줄거리를 들려주고 또 다른 책을 빌려보러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단, 구김 없이 깨끗이 봐야 했다. 다 본 책은 다시 돌려줘야 했으므로.


초등학교 입학 후 서점 주인이 바뀌게 되자 서점 아저씨는 내가 마지막으로 빌려 간 '이솝우화' 책을 선물로 주셨다. 처음으로 내 책이 생겨 한동안 그 책만 잃고 또 읽고, 책의 그림도 베껴 그리기도 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 학교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에 그 책을 기부했다.


이제 보고 싶은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회원만 가입하면 무료로 얼마든지 빌려 볼 수 있는 시대다. 

난 우리 구내 도서관에 연체 한 번 없는 우수회원이다. 

어려서부터 빌려보는 데 익숙해 책을 아주 깨끗이 본다.


엄마의 혜안 덕분에 어릴 적 책 읽는 습관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게 남아 있다. 

엄마의 유산이다.

그런 엄마가 내 엄마여서 감사하고,

그런 엄마가 너무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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