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침입자
올해 여름은 너무 길게 느껴진다.
한낮 땡볕에 나가면 숨을 쉴 수가 없고, 매일 밤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가끔 소나기라도 오면 더위가 가실 것 같아 반가웠지만 이건 무슨 하늘에서 물벼락을 내리듯 퍼붓는다.
온난화와 이상기후로 정말 지구가 많이 아픈 것 같다.
그러니 말 못하는 식물들은 오죽할까.
화분들을 밖에 내놓고 키우는데 요즘같이 기습폭우가 내리는 날엔 화분이 침수되기 일쑤였다.
선배 식집사님이 화분은 밖에서 햇볕과 바람을 쐬어주라고 했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광합성이고 환기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집에 안전하게 들여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날씨에 따라 저 많은 화분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내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우리 집 화분 서열 1위(?)인 감나무가 좀 이상했다.
며칠 전 새로운 싹을 내며 한껏 키를 키우고 있었는데 누군가 연약한 이파리를 똥그랗게, 펀칭기로 뚫은 것처럼 만들어놨다.
가끔 멧비둘기들이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 봤는데 걔들이 쪼아 먹었을 리는 없고. 누가 그랬을까 궁금해하다가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가 잘 자라던 팽나무의 잎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가지만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뭐지?
잎사귀들이 싹 사라졌네?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상하다고 여기던 순간.
소오름...
팽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떡하니 나뭇가지처럼 매달려 있는 벌레가 있었다. 막대기로 건드리니 똑 떨어졌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벌레 아니야. 나뭇가지라고.
그렇게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아, 이 녀석이 감나무 잎이랑 팽나무 잎을 갉아먹었구나.
자세히 살펴보니 한 마리가 더 있었다.
내가 막대기에 올려서 화장실 변기에 버릴 때까지도 두 마리 다 죽은척하고 있었다.
언제 화분에 알을 낳았지?
무슨 벌레의 애벌레였을까?
밖에 화분을 내놓으니 나비랑 벌, 딱정벌레 등 여러 곤충들이 들렀다 가곤 한다. 따라서 언제든지 화분에 애벌레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다.
화분 하나하나 잘 살피는 수밖에.
하마터면 화분의 식물을 모두 그 애벌레의 양식으로 줄 뻔했다.
귀찮지만 집안으로 들여놓는 수고 덕분에 알아채고 잡아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젠 벌레에게 벗어나 다시 새로운 잎을 내고 있는 기특한 녀석들.
변기 속으로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름 모를 벌레에게 좀 미안하지만...
난 벌레는 딱 질색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