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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May 29. 2021

갈비탕

음식은 사랑

작업실의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작년 7월부터 엄마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놀고, 자고, 먹고, 끄적대던 작업실에 출퇴근을 하니 생활 자체가 달라졌다.


빈둥빈둥 백조가 따로 없다


말 그대로 작업실은 회사같이 느껴져서, 출근하면 일을 하듯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반대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엄마가 차려주신 저녁밥을 먹은 후 티브이를 보며 따뜻한 방바닥을 뒹굴다가 잠이 들었다.

회사원의 일상을 닮아 있지만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없다.




가족관의 반년 정도 동거 생활 중 생긴 나의 루틴.

식사 후 설거지는 거의 내가 한다.


작업실에서의 내 설거지통


엄마 집에서의 설거지통


혼자 살 때에는 개수대에 먹은 그릇과 수저가 가득 찬 후,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설거지를 했었다. 

엄마는 그런 꼴을 절대 못 보시므로 같이 사는 동안 내가 바뀌어야 했다.

허리 아픈 엄마가 설거지하는 꼴(?) 또한 나도 못 보기 때문이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오늘은 내가 요리사~"처럼 음식을 만든다.

떡볶이나 김밥 같은 분식이나 스파게티, 김치볶음밥, 명란 아보카도 비빔밥 같은 일품요리를 한다.

어쩌면 내가 하는 음식이 엄마 아빠 입맛엔 안 맞을 수도 있다.

평소에 드시던 음식과 조금 다르고, 건강을 생각해서 간을 싱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맛있다며 잘 드셔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거짓말이어도 좋다



사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즐겁기도 하지만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나 혼자 만들어 먹었던 음식을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준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그것도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맛있게 먹는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즐겁게 만들고, 같이 먹는다.




며칠 전 동생이 냉장고에 남아있던 갈비로 갈비탕을 만들어 먹자고 레시피까지 찾아놨길래 주말에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미리 고기의 핏물을 빼두고 재료도 다 준비해놨길래 '저 녀석 갈비탕이 엄청 먹고 싶었나 보다' 했다.

작업실에 다녀왔더니 하루 휴가를 낸 동생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갈비탕집 사장님 같았다



냄새 없이 고기를 삶고, 갖은 재료에 육수를 내고, 당면을 불리고, 달걀지단을 부치는 정성을 들여 만든

동생 표 갈비탕.



가족들은 고기를 잘 먹지만 사실 난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우, 이건..

시중에 파는 갈비탕 비주얼에 손색이 없고, 고기 잡내를 싹 잡아낸 뜨끈한 국물 맛도 끝내줬다.

무엇보다 동생의 마음이 담긴 갈비탕이라 눈물 나게 고마웠다.




정말 맛있어서 고기도 국물도 다 먹었다.

아주 속이 든든하구먼...


매번 내가 만들어준 어설픈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고마웠는데, 이번에 동생에게 정성 가득한 음식을 받아보니 감개무량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소중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기분.

동생도 음식을 손수 만들어주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겠지?


음식은 곧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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