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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Sep 18. 2021

달걀

맛있어

지난 달 친한 언니가 코로나19 밀접 접촉자로 집에서 자가격리중이었다.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는 언니를 위로할 겸 언니네 집 문 앞에 빵 한 봉지를 배달하고 돌아섰는데, 그때 일을 고마워하며 자가격리를 마치고 언니가 나에게도 선물을 주고 갔다.




예전에는 3, 4천원으로 살 수 있던 달걀 한판이 요즘엔 8, 9천원에 육박한다. 혼자 있으니 한판은 너무 많고, 10알씩 구입해 먹는데 5천원 정도 한다. 달걀 값이 너무 비싸 아껴먹고 있었는데 귀한 유정란을, 그것도 동물복지 유정란을 선물로 받았다.



동물복지 유정란은 A4 사이즈의 좁은 케이지에서 자라는 닭이 아니라 자유롭게 방목해서 기르는 면역력이 좋은 건강한 닭이 낳아 건강한 달걀이고, 암탉 혼자 낳은 무정란이 아니라 자연교배로 낳은, 말 그대로 유정란이다.

화장품, 약품, 모피, 먹는 것들 모두 동물의 복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동물복지에 힘을 실어주는 착한 소비자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동물복지, 지구를 위한 소비제품들은 기존 제품들보다 가격이 비싸다.

돈보다는 신념으로 구입해야 하는 게 맞는 거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알고는 있으나 실천하지 못하는 소비이기도 하다.   



위의 달걀 두개는 비슷해 보이지만 달걀 껍질 표시정보에 맨 마지막 숫자가 다르다. 사육환경 번호인데 1은 방사 사육, 2은 축사 내 평사, 3은 개선된 케이지, 4는 기존 케이지를 표시한다.


유정란이나 무정란이나 프라이는 똑같다


평소 동물사랑과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언니가 먹는 달걀은 역시나 달랐다.

냉장고에 넣다 놓쳐서 한 알이 깨져 프라이를 해먹었는데 계란 특유의 비린내도 없이 참 고소하고 맛있었지만, 무정란을 먹었을 때는 몰랐던 죄책감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유정란이라면 병아리가 될 수 있는 달걀이 아닌가.

껍질도 얇아 쉽게 깨지는 것 같던데, 에디슨처럼 따뜻하게 잘 품고 있으면 병아리가 될 수도 있겠는데. 

한번 해 볼까?’


호기심에 정말 진지하게 한 마리 부화시켜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나 또한 삐약이를 열악한 환경에 가둬키우는 사람이 될 뿐이다.

신해철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의 슬픈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

온전히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환경과 여건이 부족한 나에겐 아직 버겁다.


인간이 아니면 병아리가 될 수도 있었을 달걀을 먹으며, 닭이 될 수 있었던 병아리에게 미안해하다가,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를 생각해본다.

무엇이 먼저이건 인간이 가축의 생과 사를 좌지우지함에 무한한 책임감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유정란이든 무정란이든,

아무튼

달걀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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