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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Oct 16. 2021

엄마의 사진

오래된 사진기와 사진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더니 남겨진 우리는 엄마 없이 숨 쉬고,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며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장롱 선반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사진기를 발견했다. 화소 좋은 스마트폰과, 고가의 DSLR 카메라가 만연한 요즘엔 잘 안 쓰는 필름 사진기였다.







엄마는 어디서나 사진을 찍어 남기기를 좋아하셨다.

가족의 생일이나, 처음 집에 전화기를 구입했을 때, 가족들과의 소풍 등 특별한 날이나 기념하고 싶을 때는 물론이고, 가끔 집에서 옷이나 장신구를 갖춰 입고 즉석에서 찍는 가족사진을 좋아하셨다. 

모두 행복했던 시간의 풍경들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엄마는 손수 사진기를 구입하셔서 우리들을 찍으셨고 그 기록들을 남기셨다. 덕분에 우린 어릴 때 사진이 많았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덕에 나도 자연스럽게 사진기를 접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엄마는 찍는 것도 좋아하셨지만 찍혀 나온 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하셨다.

틈만 나면 무거운 앨범을 꺼내 뒤적이면서, 한 장 한 장 사진에 새겨진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옛날이야기하듯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우리 삼 남매들이 어릴 때 사진 속의 엄마는 젊고 예쁘고 생기가 있었지만, 점점 우리들이 자라면서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자식으로서 그나마 엄마에게 제일 잘한 것이 있었다면 엄마의 회갑 때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어드린 일이었다. 내가 직접 찍지는 않았지만 더 나이 드시기 전에 부모님을 예쁘게 꾸미고, 좋은 옷을 입혀서 멋지게 다시 웨딩사진을 찍게 해 드린 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61세의 엄마는 너무 곱고 아름다우셨으며, 그 시간 내내 행복해하셨다.

그때 스튜디오에서 영정사진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는 나이 60에 무슨 벌써 그런 사진을 찍냐며 됐다고 그냥 흘려버렸고, 12년 뒤 엄마는 우리 곁을 말도 없이 떠나셨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신 날. 급하게 엄마의 장례식에 쓰일 영정사진이 필요했다.

평소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사진이었다.

급하게 엄마를 찍은 사진을 찾아봤지만 스마트폰 사진도 쓸 만한 것이 없었다. 리마인드 웨딩 때, 아니 3년 전 칠순잔치 때라도 찍어 놨어야 했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다행히도 예전에 내가 아빠의 회갑 때 찍어드린 사진을 인화해 앨범으로 선물해 드렸는데, 그때 찍었던 엄마 아빠의 사진이 생각났다. 한복을 입고, 비록 안방 장롱 앞에서 찍었지만 예쁘게 나와 크게 확대 해 놨던 사진이었다.



영정사진으로 할 생각도 없었던 사진이었는데 그렇게 쓰이게 되었다.  

사진 속 한복을 입은 고운 엄마는 새하얀 국화꽃에 둘러 싸여 그렇게 3일 동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몇 주 뒤. 엄마의 사진기를 발견했던 장롱에 옷 정리를 하다가 한 귀퉁이에, 뒤로 세워진 액자를 꺼내 보고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의 영정사진 액자였다.



가족 모르게 언제 이 사진을 찍으셨지?

사진 속의 엄마는 편안히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보다 최근 엄마의 얼굴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게다가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 더 슬펐다. 사진 속 엄마가 금방이라도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 우리는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감하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매년 어버이날마다 가족사진과 영정사진을 찍는 행사를 했었다. 그때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었었고, 인화된 사진을 동생 가족과 나누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후에 엄마는 우리 몰래 따로 영정사진을 찍으신듯했다.     


엄마,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영정사진 찍었다고 하면 내가 화내며 뭐라고 할까 봐 말 못 했어?

미안해.

그런데 사진 정말 잘 나왔다.

엄마랑 너무 똑같아.

그냥 엄마가 살아있는 것 같아.

그 모습 그대로 사진에서 나와 주면 좋겠다.     


엄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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