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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Dec 20. 2021

엄마 계신 곳

엄마, 우리 왔어요

작업실 내 방의 달력은 아직도 9월에 머물러있다. 내 마음도 그렇다. 

준비 없던 이별 앞에 당황했고, 시간에 떠밀려 어찌어찌 살다 보니 엄마를 보낸 지 2달이 넘어간다.

가끔씩 울고 웃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허전하고 답답하다.

내가 살아 숨 쉬는 한 늘 그럴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못 해드린 것만 생각나고, 이젠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니 아쉽기만 하다.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추모함을 꾸며드리는 것 밖에는......

급하게 엄마를 모셔서 추모함을 제대로 꾸밀 여유가 없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화장터를 거쳐 바로 추모공원에 엄마의 유골함만 덩그러니 놓고 올 수밖에 없었고, 3일 뒤 부랴부랴 사진과 꽃다발 그리고 각자의 메시지를 넣어드리고 왔다.


처음 엄마 추모함



코로나19 때문에 추모공원에는 1년에 4번 정해진 날짜에 추모함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열 수 있는 날에 맞춰 다른 일은 다 제쳐두고 엄마의 추모함에 넣어드릴 것들을 준비했다.

처음 급하게 꾸몄던 추모함에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뒤 이렇게 해 드린다고 엄마가 기뻐하실지 모르겠지만 준비하면서 나 스스로 위로와 즐거움을 얻었다. 



유골함에 얹을 화관을 만들고 직접 성경구절을 써서 구운 화병에 꽃을 꽂았다. 과거의 가족사진, 친척들과 엄마의 사진들을 하나씩 골라 보면서 건강하고 즐거웠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주일에 동생네 가족과 우리는 엄마의 추모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배를 보고 바로 출발해야 해서 점심 먹기 애매한 시간이라, 하루 전에 미리 김밥 재료를 만들어두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미리 김밥을 싸 놓고, 예배를 마치고 엄마가 있는 파주로 출발했다.

나와 동갑인 엄마의 조카, 외사촌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추모함은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어서 엄마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을 담기에는 좁았다.

엄마의 손때 묻은 시계와 장식품 등 준비해 간 물건들을 배치했다.

이제야 좀 정성이 들어간 추모함 같아 보였다. 


추모공원에 머물러 김밥을 풀었다.

다들 근처에서 사 먹으면 되는데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한다고 했지만, 멀리서 오는 가족들을 위해 먹거리를 챙기는 것은 살아계셨을 때도 엄마가 늘 하셨던 일이었다.

수고스럽게 김밥을 싸고 먹을 것을 챙겨가는 그 일을 엄마의 마음으로 나도 준비하게 됐다.

다행히 저녁 식사 하기도 애매한 시간에다가 장소도 정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라서, 간단히 요기할 수 있었다. 엄마를 보고 그냥 휙 떠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머물러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나눠먹으며 엄마에 대한 얘기,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하며 함께 엄마를 추억했다.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엄마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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