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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Dec 22. 2021

엄마 없이 보낸 생일

어떻게 태어났니

엄마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 아빠가 계시지만 열 달 동안 나를 품고, 힘들게 나를 낳아준 엄마가 없으니 어쩐지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내 존재가 너무도 초라하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예전 내 생일 때 축하하며 사진 찍어주셨던 부모님



매년 내 생일에 엄마는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드렸는데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고 나도 뿌듯했었다.


https://blog.naver.com/m2i1004/221435665230


엄마가 없는 지금, 나 먹자고 미역국을 끓이기도 싫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시집간 여동생이 집에 찾아왔다. 고기 안 먹는 나를 위해 바지락까지 사들고.



엄마 없이 보낸 첫 생일에 동생이 처음으로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다.

주부 9단의 솜씨라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눈물이 날만큼.


내 나이 다섯 살. 엄마가 막냇동생을 낳으시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엄마가 아들을 낳아 기쁜 것만큼 나도 남동생이 생겨 좋았던 것 같다. 철없던 나이에 2년 터울 바로 밑에 

여동생과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막냇동생은 나이 차이가 더 많이 나서인지 아님 내가 조금 더 철이 들어서인지 다섯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맏이라 동생들보다 더 잘해야 했고, 바쁘신 부모님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은연중에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내 생일 몇 주 뒤에 남동생의 생일이 되었다.

아빠가 동생의 미역국을 끓여줬고, 저녁에 나는 그전처럼 생일 때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월남쌈을 준비했다. 생일 케이크를 사서 초에 불을 붙였지만 손뼉 치며 노래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동생을 위해 대표기도를 했고, 동생은 잠시 소원을 빌고 초에 불을 껐다.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같은 사람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렇게 엄마의 빈자리를 서로 채워가고 있다.

엄마도 기뻐하실까?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동생들을 남겨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어릴 땐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자라고 보니 이렇게 든든한 내 편이 없다.

엄마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유일한 혈육인 우리 삼 남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의 젊은 날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우리는 엄마를 닮은 엄마의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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