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그 이름
엄마의 이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엄마는 그냥 엄마이기 때문이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 나도 모르게 외치게 되는 소리 '엄마'.
타인이 엄마를 부를 때도 누구누구 엄마 또는 박 권사님이라고 하지 엄마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엄마의 이름이 온전히 불리게 되는 곳은 병원이나 은행, 구청 같은 곳이었다.
엄마는 5남매 중 막내로, 위로는 언니 셋과 오빠 그리고 엄마였다.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었던 그 시절, 딸만 내리 셋을 낳으셨던 외할머니는 드디어 외삼촌을 낳고 부담 없이
맘 편하게 엄마를 낳으셨을 것이다.
아들을 낳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셨는지는 몰라도, 이모들의 이름은 누가 들어도 남자 이름이었다.
윤식, 윤세, 윤석. 그리고 외삼촌 이름은 일순.
엄마의 이름은 윤희였다.
지금 들으면 그저 평범한 여자 이름일지 모르지만, 그때 당시의 여자 이름으로는 세련되고 예쁜 이름이었다. 이모들은 자매들 중에서 얼굴도 제일 예쁘고, 이름도 제일 예쁜 이름을 가졌다고 엄마를 추억했다.
막내딸이라 외할아버지도 엄마를 아끼셨을 것이다.
어릴 적 엄마의 생일 전날, 외할아버지가 꽃신을 사 와서 장롱 위에 몰래 올려놓으셨는데, 그걸 알고 어린 엄마는 그 꽃신이 신고 싶어서 밤새 올려다보며 조바심을 내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런 귀하디 귀한 막내딸이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걸 알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생각해 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바로 사망 신고를 하지 못했다.
서류상이지만, 그러면 진짜 엄마가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살 때 주민등록증을 떼어보면 아빠, 엄마, 나, 여동생, 남동생 이렇게 다섯 명이 차례로 있었다. 여동생이 결혼을 하고 네 명이 되었다가, 내가 독립하고 나서는 세 명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는 1인 가구 세대주로 홀로 기입되어 있다.
내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면 동생들은 나오지 않지만 부모님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나온다.
엄마 아빠의 이름 밑에 내가 나온다.
‘나는 엄마 아빠의 자식이다. 우린 가족관계다.’라는 확인서류이다.
몇 달 전 구청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어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엄마의 이름 옆에 쓰인 ‘사망’이라는 글자를 한동안 멍하게 쳐다봤다.
‘나 엄마 없구나... 내 가족은 아빠뿐이구나......’
집에 와서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가 보호자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가지고 다녔던 가족관계 증명서를 찾아봤다.
엄마의 이름 옆에 ‘사망’이라고 써지기 전의 서류였다. 엄마가 아직 살아계신 것만 같다.
이제 모든 서류에는 계속 엄마 이름 옆에는 ‘사망’ 이란 글자가 쓰여 있겠지.
서류상 사망이 붙은 이름이지만, 내 마음속에 엄마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영생’이라는 글자 옆에 쓰여 있다.
엄마 이름을 쓰고 또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