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은그림 Apr 09. 2022

티브이를 보다

해피엔딩 드라마 

작업실에 텔레비전이 없는 나는 주말에 집에 오면 여러 방송의 채널을 돌려보며 리모컨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뉴스를 보다가도 눈물을 흘렸다.

엄마 또래의 어르신들이 나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방송은 보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부모님 또래의 사람들이 부럽고 괜히 심통이 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오는 방송을 보면 안쓰럽고 엄마 생각에 또 눈물이 났다.     


그래서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본다.

10여 년 전에 했던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와 ‘무한도전’을 한 채널에서 계속 보여주는데 봤던 걸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냥 웃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요즘에는 또 먹방 티브이를 즐겨본다.

지금은 다섯 명이 멤버지만 예전의 ‘맛있는 녀석들’에 나오는 뚱뚱한 네 사람의 먹방 재방송이 재미있다.

나는 그렇게 먹지도 못하고, 맛집에 가지도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누구나 그렇듯 먹을 거 앞에서 설레고 즐겁고 신나 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 또한 신났다.

깨작거리지 않고 거부감 없이 잘 먹고,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 방식들을 공유하며, 개그든 이야기든 서로가 서로에게 죽이 잘 맞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고 흐뭇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생전에 드라마를 좋아하셨다.

아침 드라마, 저녁 드라마, 주말 드라마를 시간대 방송사별로 겹치지 않게 딱딱 맞춰서 시청하셨다.

스토리나 등장인물이 헷갈릴 것 같은데 엄마는 각각의 드라마를 이해하고 즐겨보셨다. 

며칠 전 그동안 엄마랑 같이 보던 저녁 드라마가 종영했다.

가난하지만 착한 여주인공이 아이까지 낳고 살던 첫 번째 남편의 배신과 할머니의 죽음 등 나쁜 사람들의 음모로 온갖 역경을 겪으며 억울하게 당하기만 했던 초반 때의 이야기만 봐서, 엄마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모른다.

사실 난 드라마는 잘 보지 않았는데, 엄마랑 얘기(욕)하며 함께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라 끝까지 시청했다.

주인공이 억울하게 당한 만큼 나쁜 사람들이 벌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결론을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였다.     




엄마,

엄마 생전에 같이 보던 드라마가 이제야 여주인공이 행복하게 끝났어요.

나쁜 사람들은 다 감옥에 갔고요.

우리의 예상대로 ‘두 번째 남편’은 여주인공과 자꾸 엮여 싸우기만 했던 그 남주인공이었어요.

게다가 여주인공이 글쎄 오래전 잃어버린 재벌가 부인의 딸이었더라고요.

그 재벌가 부인은 바로 남주인공의 엄마였는데 어찌 보면 남매지만 혈연관계가 전혀 없어서 잃어버린 딸도 

찾고, 기르던 아들을 사위로 맞는 결말이었어요.

그럼 그 남주인공의 부모는 누구였냐고요?

그동안 여주인공을 돌봐주던 이웃 빵집 아줌마의 잃어버린 딸(?)이 아닌 아들이었대요.

드라마를 보면서 전개되는 상황들이 참 어처구니없었었어요.

마지막 회에서 여주인공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는 장면이 나와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이 흐르고, 하객들 중에 여주인공의 할머니가 한복을 곱게 입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돌아서는 여주인공과 눈이 딱 마주친 거예요. 할머니와 여주인공은 속으로 이야기해요. 

할머니가 그래요. 이제 눈물은 없는 거라고, 할머니는 이제 소원 다 이루었다면서 너무 좋아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것 같다고. 여주인공은 눈물을 삼키며 말해요. 행복하게 잘 살 테니 지켜봐 달라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 장면에서 엄마도 생각나고..

내게 좋은 날이 오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 날이 올 때 엄마도 그렇게 와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보시던 드라마는 끝났지만, 엄마에게 들려줄 새로운 드라마는 이제 내가 만들어가야겠지.

엄마, 지켜봐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이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