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은그림 Apr 22. 2022

칼국수

엄마가 좋아한 음식

나는 독립이라는 명목 하에 일주일에 삼사일은 작업실이라는 곳에서 따로 지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본가로 가서 아빠와 동생과 함께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작업실로 온다. 

평소 동생이 출근하고 나면 집에 혼자 계신 아빠는 혼자 점심을 챙겨 드신다. 

언젠가 본가에 들를 일이 생겨 갑자기 방문했는데, 점심도 훌쩍 지난 시간에 아빠가 국에 밥을 말아 반찬도 없이 드시는 것을 보게 됐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을 먹고 집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점심이 다 되어갔다. 마침 점심밥도 없었고 어차피 작업실 가야 하는 길에, 아빠랑 오랜만에 외식하기로 했다.

엄마 생전에 셋이 자주 가서 먹었던 칼국숫집이었다.



원래 쉬는 날도 아니었는데 마침 가게 문이 닫혀있어서 근처 다른 국숫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난 부모님과 오면 칼국수와 수제비를 적절히 섞은 칼제비를 시키곤 했는데 이곳에 칼제비는 없었다.



단골 칼국수집 사장님은 아빠를 보고 반가워하시더니 칼국수 하나만 주문하자 자꾸 돌아보며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다.


묵묵히 칼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운 아빠가 계산을 하러 나가시자 사장님이 '오늘은 왜 혼자 오셨냐'며 인사를 건네기에 몇 달 전 엄마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말을 전했고, 사장님도 깜짝 놀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고 했다.


그동안 엄마를 잃은 자식으로서의 슬픔이 크다며 내 감정만 생각했지 아빠의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빠는 그저 엄마를 고생시킨 장본인이라며 원망만 했을 뿐.

한 번도 짝을 이뤄 살아보지 못한 내가 배우자의 부재가 어떤 건지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촌수를 따져도 부모와 자녀는 1촌이지만 부부는 무촌이라 하지 않던가.

부부의 연으로 40년 넘게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살아오셨데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갑자기 혼자가 되었으니 그 허전함과 상실감을 어찌 나의 감정과 저울질할 수 있겠는가.




매번 둘이 같이 와서 드셨을 칼국수를 혼자 드시러 오셨다니.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엄마가 그리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빠, 칼국수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그리고 혼자 가시지 말고 우리 같이 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티브이를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