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갈 수 없는 병원
화장대 서랍에 있던 엄마의 병원 진료카드.
이 카드를 가지고 엄마는 강남의 모 병원 류머티즘 내과에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셨다.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예약 문자가 왔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그냥 병원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었겠지만, 20년 가까이 엄마를 모시고 다닌 터라
의사와 간호사와도 안면이 있었다.
그 간의 정도 있고, 병원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살아계실 때 모시고 다녔던 병원에 엄마를 대신해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예약시간에 맞춰 나 혼자 병원에 갔다.
그동안의 피검사나 염증 수치는 매번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된 문제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관련 없다고 할 테니.
다만 20년 가까이 엄마의 주치의로 한결같이 진료해 준 점에 대해 그저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주치 의사와 간호사들의 위로의 말에 애써 담담하려고 했지만 시야가 뿌예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올 일이 없어졌다.
3개월마다 가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에게 하는 유일한 효도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프리이기 때문에, 더구나 일이 많아 바쁜 프리랜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병원에 따라다니는 나보다는, 하는 일로 바빠 열심인 나를 더 원하셨을 것이다.
엄마 눈에 보이는 내가 남들 눈에도 일없는 백수처럼 보일까 신경 쓰셨음을 나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병원에 가는 일이 즐겁지 만은 않았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어쩜 그리 많은지 한번 다녀오면 진이 쏙 빠진다.
한 번은 내가 엄마 병원 가는 날짜를 깜박 잊고 다른 일로 어딜 다녀왔는데, 그날 엄마는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 후로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병원 가는 날은 늘 신경 써서 내가 꼭 챙기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병원에 함께 가는 나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허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하시니 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데, 옆에서 같이 걷는 나에게 항상 먼저 가라고 하셨다. 엄마가 불편해하신다고 생각해서 나는 늘 앞서 엄마의 길을 살폈다.
엄마는 남을 도와주면 도와줬지 피해 주기는 극도로 싫어하셨다. 그게 자식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부탁도 잘 안 하셨다. 알아서 해 드려야 한다. 섭섭하거나 불편해도 절대 말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너무너무 미안해진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동생은 엄마의 말을 반대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했다.
괜찮다면 괜찮지 않은 것이고, 하지 말라면 하라는 것이라고.
뒤로 돌려 말하는 것,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 나는 그런 뉘앙스를 잘 모르겠고 잘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내가 연애를 못하는 것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눈치코치 없는 미련 곰탱이 같은 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내 마음 가는 데로 엄마랑 좀 더 붙어 있을걸.
엄마가 먼저 가라고 해도 옆에 딱 붙어서 같이 걸을 걸.
지하철에 자리가 나지 않아도 엄마 손 꼭 붙잡고 그냥 같이 서 있을 걸.
엄마랑 뭐든 같이 했었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옆에 같이 앉자고 하는 엄마 앞에서 괜찮다며 보디가드처럼 서있던 내 모습.
엄마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크지만, 쌀쌀맞고 무뚝뚝한 태도로 표현하는 나 또한 엄마와 닮았다.
우리는 청개구리 모녀였다.
엄마,
하늘나라에서는 병원 갈 일 없겠지?
아프지 말고
하나님 품에서 편하게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