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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Jul 01. 2022

엄마의 작품

엄마의 손길과 정성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결혼 전 처녀시절에는 가발공장에서 가발을 만드셨고, 결혼 후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했을 때에는 일명 마후라(머플러, 스카프, 숄 등) 테두리를 손 바느질로 마감하는 일도 하셨다. 때로는 부업으로 봉투를 붙이거나, 조화 꽃을 만들어 납품하는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억척같이 하셨다.

어쩌면 손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식들과 먹고 살려니 하게 된 일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생업을 위해 환경미화 일을 하셨지만 손으로 뭔가 만드시는 일을 좋아하셨다.

스티커북에 열중하는 울 엄마


퇴직 후 무료해하시는 엄마를 위해 이것저것 사다 드렸는데

간단한 스도쿠 문제, 색칠공부, 스티커북 등 이왕이면 손과 머리를 쓰는 취미를 권해드렸다.


주인 잃은 재봉틀


재봉틀도 잘 다루셔서 어지간한 옷들은 수선집에 맡기지 않아도 엄마 손에서 척척 다 해결되었다.

독립한 큰 딸내미 여름과 겨울에 쓰라고 커튼도 손수 만들어 주셨다.



사실 원래 엄마가 잘하시는 건 뜨개질이었다.

옛날부터 목도리는 기본이고 가족들의 조끼며 스웨터 등을 떠서 입히셨다.

나는 대바늘 뜨기 밖에 못해서 같은 패턴으로 길게 뜨는 목도리만 뜰 줄 알지 코바늘 뜨기는 완전 젬병이다. 엄마는 대바늘보다는 코바늘 뜨기를 즐겨하셨는데, 한 손으로 바늘을 잡고 실을 휘휘 돌리면서 어쩜 그리 순식간에 모양을 만들어내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몇 년 전 교회의 같은 속회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세미를 떠서 하나씩 나눠주기도 하셨다. 

정말 울 엄마는 참 정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예쁜 것들은 선물로 주고 남은 것들은 내가 다 보관하고 있다.



심심하실 땐 기존에 안 입고 오래된 니트의 실을 풀어 다른 걸 뜨기도 하셨다.

동대문이나 다이소에 갈 때면 엄마가 생각나 실 재료를 사다드리곤 했다.

수세미 외에도 틈틈이 가방이랑 모자, 머리끈, 냄비 받침대, 쿠션 커버, 조끼 들도 만드셨는데 

참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작품이 뜨개 도안 없이 오로지 엄마의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 대칭이 안 맞아도 나름 수제품의 멋이 있다.

여름과 겨울에 열심히 입고 다녔던 조끼
동생이 살 빼면 입는 다던 조금 작게 떠진 조끼. 언제 입을 것인가..



언젠가 친구의 카페에서 엄마가 뜬 티코스터를 판 적이 있었다.


순수한 엄마의 창작품이니 엄마 이름으로 닉네임을 만들어서 태그로 붙였다.

‘유니 박’

엄마의 영어 이름은 정말 세련된 디자이너 이름 같았다.

모양이 다 다른 티코스터. 도안은 엄마의 머릿속에 있었다.


쏠쏠히 팔려 푼돈이지만 얼마의 수익금도 받으셔서 친구 덕분에 엄마는 창작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엄마의 솜씨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으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카페에 남아있던 마지막 티코스터는 동생과 하나씩 나눠가졌다.
엄마의 작품을 정리하다가 한 구석에서 엄마가 예쁘게 뜬 주머니를 발견했다.


엄마의 작품은 동생들과 내가 오래도록 보관할 것이다.

실 한 올, 바늘 한 코 한 코... 

엄마의 손때와 정성을 겹치고 엮어서 만든 

바로 엄마 그 자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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