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길과 정성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결혼 전 처녀시절에는 가발공장에서 가발을 만드셨고, 결혼 후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했을 때에는 일명 마후라(머플러, 스카프, 숄 등) 테두리를 손 바느질로 마감하는 일도 하셨다. 때로는 부업으로 봉투를 붙이거나, 조화 꽃을 만들어 납품하는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억척같이 하셨다.
어쩌면 손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식들과 먹고 살려니 하게 된 일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생업을 위해 환경미화 일을 하셨지만 손으로 뭔가 만드시는 일을 좋아하셨다.
퇴직 후 무료해하시는 엄마를 위해 이것저것 사다 드렸는데
간단한 스도쿠 문제, 색칠공부, 스티커북 등 이왕이면 손과 머리를 쓰는 취미를 권해드렸다.
재봉틀도 잘 다루셔서 어지간한 옷들은 수선집에 맡기지 않아도 엄마 손에서 척척 다 해결되었다.
독립한 큰 딸내미 여름과 겨울에 쓰라고 커튼도 손수 만들어 주셨다.
사실 원래 엄마가 잘하시는 건 뜨개질이었다.
옛날부터 목도리는 기본이고 가족들의 조끼며 스웨터 등을 떠서 입히셨다.
나는 대바늘 뜨기 밖에 못해서 같은 패턴으로 길게 뜨는 목도리만 뜰 줄 알지 코바늘 뜨기는 완전 젬병이다. 엄마는 대바늘보다는 코바늘 뜨기를 즐겨하셨는데, 한 손으로 바늘을 잡고 실을 휘휘 돌리면서 어쩜 그리 순식간에 모양을 만들어내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몇 년 전 교회의 같은 속회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세미를 떠서 하나씩 나눠주기도 하셨다.
정말 울 엄마는 참 정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심심하실 땐 기존에 안 입고 오래된 니트의 실을 풀어 다른 걸 뜨기도 하셨다.
동대문이나 다이소에 갈 때면 엄마가 생각나 실 재료를 사다드리곤 했다.
수세미 외에도 틈틈이 가방이랑 모자, 머리끈, 냄비 받침대, 쿠션 커버, 조끼 들도 만드셨는데
참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작품이 뜨개 도안 없이 오로지 엄마의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 대칭이 안 맞아도 나름 수제품의 멋이 있다.
언젠가 친구의 카페에서 엄마가 뜬 티코스터를 판 적이 있었다.
순수한 엄마의 창작품이니 엄마 이름으로 닉네임을 만들어서 태그로 붙였다.
‘유니 박’
엄마의 영어 이름은 정말 세련된 디자이너 이름 같았다.
쏠쏠히 팔려 푼돈이지만 얼마의 수익금도 받으셔서 친구 덕분에 엄마는 창작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엄마의 솜씨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으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엄마의 작품은 동생들과 내가 오래도록 보관할 것이다.
실 한 올, 바늘 한 코 한 코...
엄마의 손때와 정성을 겹치고 엮어서 만든
바로 엄마 그 자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