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야 한다
요즘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예전 단독주택에 살 때, 정 많은 엄마는 늘 이웃과 음식도 나눠먹고 담소도 나누며 정답게 살았었다.
너무 친하다고 생각해 오지랖을 넘어 과도한 참견을 하던 이웃들도 있었지만 엄마가 있어서 좋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고 보니 이제는 모두들 배려를 가장한 무관심으로 그저 같은 아파트의 주민들로 지내는 것이다.
그게 한편으로는 마음 편하기도 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면 예의상 목례를 하거나 눈인사를 하기도 한다. 출근 시간대나 퇴근시간대 등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시간대가 맞아 안면 있는 이웃도 있지만, 그건 극 소수일 뿐 대부분은 그냥 타고 쌩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싹싹한 아이들은 배꼽 인사를 하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는데, 뉘 집 자식인지 참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런 아이들 덕분에 나도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게 된다.
며칠 전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도 할 겸 동생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이윽고 다른 층에서 문이 열리며 우리처럼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한 젊은 남자 이웃이 입장했다. 우리는 으레 서로 꾸벅했다.
1층에 같이 내린 우리는 재활용 분리장에서 서로의 쓰레기를 분리해서 넣었다.
마침 재활용품들은 이미 한차례 수거해간 이후여서 통들이 모두 텅텅 비어있었다.
같이 내려온 그 이웃도 자신의 쓰레기를 분리하는데, 그만 나랑 부딪혀 쓰레기가 잘못 들어가게 됐다.
내가 "아~ 어떡해. 잘못 들어갔네." 했더니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순간 내 입장에서 "아니, 나이도 어린것 같은데 반말이네."라고 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언사였다.
내가 딱 보기에도 내 동생과 비슷하거나 더 많이 어려 보이던데 나한테 초등학생 아이에게 하듯 말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누나가 더 나이 많은 것 같은데.." 하며 깐죽거렸고, "야, 조용히 해. 저 사람이 알면 얼마나 민망하겠냐?" 입가에 미소를 달고서 내가 말했다.
내가 키도 작고 후드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자신의 아이 또래로 보였나 보다.
원래 동안이라는 소리는 많이 듣고 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코로나19 팬데믹부터인 듯)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으니 화장은커녕 관리도 안 하고, 몸 편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겼더니 이제는 제 나이로 혹은 더 나이 들어 본다. (전에 동생과 정육점에 갔을 때 사장님이 동생을 아들이냐고 물어봐서 쓰러질 뻔했던 일도 있었다.)
온전한 나이로 봐주는 것도 다행이라 생각할 만큼 이제 동안이라는 소리는 들을 수 없는 나이가 됐다.
역시 난 가려야 좀 어려 보이는 건가?
동생이 한마디 한다.
모른 척할 테니 마음껏 즐거워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