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뚝이다.
-끈기 없는, 하지만 노력하는.
원래 끈기 없음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 일일’, 아니, ‘작심 반나절’ 형 인간이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직후에는 주변에다가 ‘이러저러한 걸 할 거야’라고 말해놓고는 그 일을 추진할 의욕에 차 있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시도하다가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방법을 찾기보다는 회피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일은 머릿속의 우선순위에서 사라진 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 문화를 접하는 일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예외였다. 우리나라 말과는 다른 발음, 그리고 각기 다른 사회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접하는 것만큼은 언제나 너무나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TV 프로그램 중에서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세계는 지금', '비정상회담', '미녀들의 수다' 같은 프로그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집중모드로 보곤 했고, 우리나라 말과는 뭔가 다른 외국어 억양과 발음이 너무 신기해서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한국어를 포함한 8개국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큰일이 생겼다. 2015년 말쯤의 일이었다. 지인 중 하나가 메신저로 단톡 방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에서 알게 된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사람과 뭔가 이야기가 굉장히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호기심을 갖게 된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첫날,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그의 외모에 적잖이 실망하긴 했지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며 도와달라고 했고, 나는 무엇에 이끌렸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인생을 이렇게 송두리째 바꿔놓게 될 줄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는 고맙다며 자신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되어준 나에게 남자로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니 앞으로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면서 말이다. 그 사람의 사랑이 진심이라 믿었기에, 그 사람을 남자 친구로 두기로 했다.
처음 100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기까지, 그 사람은 정말 잘해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람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만날 때면, 주변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는 것 같다며 어쩌면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냐면서 주변인들을 정리하라고 했고, 결국 내 주변에는 그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나는 프리랜서 영어 관광통역안내사로 약 6년 정도 일을 해 오고 있었다. 잘 만나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이런 제안을 했다. 나는 관광통역을 했고, 자신은 의료관광 쪽의 일을 했으니, 둘이 합쳐서 뭔가를 해 보자고. 단, 자신은 사람에게 너무 데어서 대표로 나서고 싶지 않으니까 나를 대표로 만들고 자신은 서포트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내 이름의 회사를 세우고, 회사 설립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분주해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했던 프로젝트는 꼭 막판에 디데이를 하루 이틀 남기고 어그러졌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등을 돌렸다. 왜 그렇게 된 거냐고 물으면 그는 항상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 사람들이 자신을 얕잡아보고 약속을 파기했다며 남 탓을 했다. 자신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회사를 설립하면서 금융기관에 부채도 많이 생겼는데, 네가 좀 잘하지 그랬냐며 오히려 윽박지르곤 했다.
그러다 결국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2017년 6월 말이었고, 그 사람을 만난 지 정확히 1년 반이 되던 시점이었다. 그는 나에게 모든 법적인 책임과 어마어마한 빚을 지우고 도주를 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거짓말로 말장난을 해 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이드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나도 한순간에 커리어가 무너지게 되었다. 업계에서는 ‘그 사람과 내가 둘이 같이 사기를 쳤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동안에 나름 잘 쌓아왔던 이미지마저도 확 실추되어 더 이상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졸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졌고, 회사를 세우면서 생긴 몇 억대의 빚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파산신청을 했다. 그리고 약 1년 동안 강제 실직상태가 계속되었다. 2018년 봄, 파산 면책을 선고받았다. 그 후 5년 간 이름 하나가 더 생겼다. ‘신용불량자’라는, 뉴스에서나 들을 수 있는 낯선 이름이었다. 이제 나에게 이 주홍글씨가 지워질 날은 1년 4개월 정도가 남아있다.
2017년 여름과 2018년 겨울(내가 강제 실직상태로 있었던 약 9개월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해 여름은 너무나도 더웠고, 2018년은 역대급으로 추웠다고. 하지만 그때의 여름과 겨울이 어땠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 때문에 미안함과 죄책감이 너무나 컸다는 것. 그래서 그러한 충격 때문에 찾아간 정신과에서는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극단적인 선택을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죽어야 해? 그 사람이 괴로워하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어야지. 난 여기서 더 이상 엇나가지 않을 거고, 비뚤어지지도 않을 거야. 물론 지금이야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런 괴로움을 비뚤어지지 않고 온전히 다 겪어내야 지금보다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어. 여기서 죽으면 넌 겨우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되는 거야. 너가 항상 그랬잖아.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냥 여기서 멈추고 그 정도의 그릇만 될 거니? 아니면 지금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거니? 그건 결국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지금 죽는다고 생각해 봐. 널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한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건데, 부모님은 무슨 죄니? 온전히 잘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더 잘 살아갈 생각을 해야지, 여기서 그냥 주저앉으면 안 돼.’
이 사건을 계기로 예전의 ‘작심 반나절 형 인간이었던’ 나에게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리고 하나 더. 하려고 마음먹은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어떻게든 완수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예전보다는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번 시도해서 안 되면 두 번 하고, 두 번 시도해서 안 되면 세 번 하고.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지 않고도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인생을 뒤바꿀 만한 일을 겪고도 변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금융권 빚은 해결이 되었지만, 아직 부모님께는 금전적인 빚뿐만 아니라 마음의 빚도 함께 남아있다. 그래서 요즘은 회사를 다니는 틈틈이 내가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요즘 주로 읽는 책은 창업이나 경제경영, 재테크과 관련된 책이 많은데, 거기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나는 영업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난 투자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뭔가를 한다면, 지식창업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문화와 관련된 지식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문화와 관련된 책을 새롭게 접하고 있다. 힘든 과거가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주어진 선물 같은 삶이 그저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오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