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인성을 함께 갖추고 싶은 나.

네 맞아요. 저 욕심쟁이입니다.

by 그럼에도불구하고

2010년에 영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따고 나서 한 시티투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투어가이드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누구나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첨승이라는 과정이다. 누군가의 차에 추가로 탑승한다는 의미를 곱씹어보면 대충 어떤 과정인지 구독자님들도 조금은 짐작이 될 것 같다. 가이드가 되기 전, 일종의 수습 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첨승을 하면서부터는 가이드의 업무를 하나하나 배워나가게 되는데, 업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 역사 등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그것도 한 곳에서 가만히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 지역을 직접 다니면서 하는 공부여서, 정적인 공부에 싫증을 잘 내는 나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가이드로 일하면서부터는 그 전에는 쓸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있었던 재밌는 일들이나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을 그냥 잊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회사에서 잘한다고 소문난 선배들처럼 멋진 가이드로 자리 잡고 싶었으니까.

그러다가 작은 임무가 주어졌다. 오전에 DMZ에 가는 손님들을 호텔에서 픽업해서 데려가고 다른 선배님이 판문점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을 픽업해서 데려오면, 서로 중간지점에서 만나서 손님들을 바꿔서 데려가는 거였다. 나는 서울로, 선배님은 DMZ로. 그 투어가 남들 앞에 서게 된, 가이드로서의 첫 투어였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쥐구멍 같은 걸 하나 파서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어 진다. 일종의 ‘흑역사’ 같은 거다.

그때 탔던 미니버스에는 10명의 외국인이 있었다. 마지막 호텔 픽업까지 다 마치고 나서 DMZ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스무 개의 푸른 눈동자가 쳐다보고 있던 그 순간이 얼마나 긴장되었는지 모른다. 분명히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유명한 건물들이나 한국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정말 많이 공부하고 입 밖으로도 많이 말하는 연습을 했는데 멘트가 입에 익지 않아서였는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더군다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과 같이 있는데 말이다. 그 손님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차 안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뭔가 얘기는 해야겠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결국 그 스무 개의 푸른 눈 앞에서 덜덜 떨면서 종이에 적어놓았던 정보를 그냥 대놓고 읽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아마추어라는 티가 팍팍 날만큼. 오늘 가이드로서는 처음 투어를 해 봐서 너무 긴장된다며, 그러니 좀 많이 부족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양해 좀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그나마 맨 앞에 앉아 계시던 미국인 할머니가 “너 오늘 가이드로서는 첫 투어라고 했지? 근데 너 침착하게 너무 잘하고 있어. 괜찮아, 괜찮아.”라고 해 주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푸른 눈 공포증’은 계속 이어질 뻔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40명을 꽉 채운 전세버스에서 80개의 다른 색깔을 가진 눈동자들을 마주해도 오히려 그 사람들 앞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고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쳐서 여행객들을 웃기고 , 때로는 그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는 강심장이 되었다.

그날, 가이드로서의 첫 투어가 끝나고 나니, 목표가 하나 생겼다. 선배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실력 있는 가이드가 되고 싶었다. 실력 있는 가이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카카오스토리에 일기장처럼 오늘 했던 투어는 이랬고 저랬다며 남들이 보든 말든 나만의 투어 일지를 미주알고주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투어는 이런 게 좋았고, 이런 게 부족했다는 둥, 여기서 이런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아쉬웠다는 둥. 오늘은 어느 나라 손님을 만났는데 이런 일이 있어서 기분이 어땠다는 둥. 그때의 그 기록을 바탕으로 조금씩 더 나은 가이드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조금씩 굵직굵직한 행사도 맡게 되었다. 이름도 낯선 국빈급 의전. 싱가포르 보건부 직원들, 아랍에미레이트 국방부 차관 및 차관보(그 나라 합동참모본부쯤 되는 기관의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3성 장군을 모시고 5사단 열쇠부대의 GP인가 GOP에도 다녀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선거관리위원회 국장급 직원들, 말레이시아 체육회 등등. 소위 말하는 글로벌 리더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했길래 현재 저 위치에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그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전 세계에서 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인생에서 얻은 최고의 행운인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이드가 되기 전까지, 참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고, 되지도 않는 교만함이 하늘을 찔렀으며,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그들을 우습게 보며 아래로 생각하곤 했다. 그들을 비하하는 발언 또한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을 향한 나의 무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리더라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그동안 너무나도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깔아뭉개기보다는 존중했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기보다는 겸손했으며, 나만 잘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함께 잘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세계 일류라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월드클래스에서 노는 사람들이니까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무지에서 비롯된 큰 착각이었다.

부끄러웠다. 그때까지 잘못 살아온 인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어디 가서 새로운 삶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억만금을 주고라도 사고 싶었다. 그럴 돈도 없었지만. 의전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실력도 좋고, 인성 또한 좋은 사람이 되자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만은 볼 수 없는 과거를 거울 삼아, 그리고 일하면서 만났던 글로벌 리더들의 행동을 교훈 삼아 교만함을 없애고 겸손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항상 같은 대답을 하곤 한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때의 경험이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30대 후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지만 한 50년쯤 지나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동안 꿈꿔왔던 것처럼 실력과 인성을 함께 갖춘 사람이기를 빌어본다.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이왕이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웃었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나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까운 사람이 죽었다고 진심으로 애도해 주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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