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 네가 홍길동이라도 돼?
나는야 뚝배기 브레이커.
어렸을 땐 지금과 참 많이 달랐다. 지금은 자기소개를 할 때 “안녕하세요, 낯가림을 팔아먹고 태어난 OOO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외향적이지만, 어렸을 땐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몰라 늘 혼자 다녔고, 그런 삶이 훨씬 익숙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왕따를 당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그것도 성당 친구들한테. 대략 10년 정도는 되는 거 같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들보다 눈과 눈 사이가 멀다는 것. 그래서 그걸 가지고 놀리던 아이들이 많았고, 가끔 필요할 때만 찾아와 그들의 니즈를 해결하고는, 마치 너와 내가 언제부터 친구였냐는 듯 쌩 하고 돌아서서 바람소리만 남기고 가곤 했다.
그런 일들을 오랜 시간 동안 많이 당해봐서일까. 어디를 가도 사람들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소위 말하는 ‘핵인싸’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보다, 잘 못 어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먼저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 저 사람이 뭔가 필요한 건 없을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데 외롭지는 않을까 라는 오지라퍼 같은 생각도 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억압당하고 못된 일을 당하는 꼴을 보는 것도 나의 빡침 포인트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일도 아닌데 내 일처럼 나서서 싸웠던 경우도 종종 있다. 주변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무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 네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나서고 그래?”라는 말을 들은 적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어떡하나. 화가 나고 열 받아서 제 명에 못 살겠는걸.
이쯤에서 그런 못된 놈들을 혼내 준 썰을 좀 풀어야 할 것 같다. 작년 6월쯤의 일인데, 그때 당시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의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K 팀장이라고 나보다 11살 어린 남자애가 있었는데, 일은 정말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부서 내에서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가리지 않고 막말을 해대서 새로 온 사람을 빠른 시일 내에 그만두게 만들기로 유명했다. 그러고는 그렇게 상처 받고 그만두는 사람들에게 자기밖에 모르는 인성 쓰레기라며 되려 욕하기도 했다.
그전까지 그 사람은 업무적으로 특별히 부딪힐 일은 없었고-왜냐하면 그 사람은 주간에 일을 했고, 나는 야간에 일을 했으니까- 그 사람도 초반에는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싶어서였는지 누구에게든 잘해줬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놈은 그동안 숨겨놓은 발톱을 드러냈다. 야간 팀이 없어지고 야간 팀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주간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내가 주간 팀 중간관리자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팀장의 만행을 조금씩 보고 듣게 되면서 분노 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5월. 그때 당시 신입으로 들어온 분이 계셨는데, 30대 후반인 나보다도 스무 살 가까이 많은 분이었다. 앞으로 이 분을 A 언니라고 칭하겠다. 아무래도 A 언니를 대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이 일을 배우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 전체 신입들의 속도와, 그리고 기존 인원의 첫 업무 시 습득 속도와 비교를 해 봐도 매우 느리셨다. 게다가, 성격은 너무 온순하셨지만 자존감이 너무 낮으셔서 매번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그래도 우리 부서의 전반적인 업무가 어려운 편이어서 좀 더 익숙해질 때까지 최소한 3개월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그때는 더군다나 중간관리자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 좋은 관리자가 되겠다며 틈틈이 목민심서를 읽을 정도로 의욕이 충만할 때이기도 했다. 물론 예상보다 많이 느렸던 A 언니에게 나라고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분도 일 못하고 싶어서 못하겠나. 본인은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답답하겠어. 자기보다 새파랗게 어린애들한테 매번 안 좋은 소리 들으시는데,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삭인 적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략 6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K 팀장과 A 언니,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대략 10명 정도의 인원이 마지막 조로 편성되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A 언니가 중간에 업무 프로세스가 헷갈리셨는지 그만 실수를 하시고 말았다. 우리가 일하던 부서는 항공권 관련 부서여서 다루는 금액이 제법 컸는데 공중에서 약 70 만원 정도가 붕 떠 버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K 팀장은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기 자리와 A 언니의 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갑자기 곰이 울부짖는 것 마냥 A 언니 앞에 가서 포효하기 시작했다. 왜 당신이 싼 똥을 치우는데 내가 고객한테 억울하게 욕을 먹어야 하냐며. 그것도 모자라, 부서 내 모든 사람들이 24시간 보고 있는 업무용 채팅방에 A 언니의 실명을 거론하며 “OOO 씨, 경위서 제출하세요.”라고 썼다.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안 그래도 ‘한 번만 나 더 화나게 만들어 봐. 이 구역의 미친 여자는 나라는 걸 제대로 보여줄 테니. 절대로 그냥은 안 넘어갈 거야. 두고 봐 아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나까지 A 언니가 당했던 부당한 대우에 침묵한다면 A 언니를 완전히 벼랑 끝에서 등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A 언니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상한 소리를 듣는 게 더 당연시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K 팀장의 메시지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K 팀장님, 아무리 화가 나서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업무방입니다. 팀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정도가 많이 지나치시네요. 거친 언행은 삼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 30분 지나고 뒤늦게 댓글을 발견한 K 팀장은, 이번엔 나에게 와서 포효했다. 그것도 퇴근을 30여 분 앞두고. “중간관리자면 다예요? 나는 왜 저 사람 때문에 욕먹어야 되는데?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훈계하는 건데, 당신이 뭔데 하라마라야?”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쌀을 반토막만 잘라먹고 살았나. 나보다도 새파랗게 어린것이 이때다 싶어 반말을 해 대는 것도 어이없었다. 지위 운운하면서 아랫사람한테 훈계한다며, 일 못하는 사람은 욕먹어도 싸다는 말에 그동안 참고 참았던 화가 폭발해 결국 K 팀장과 대판 싸우기 시작했다.
“팀장님 관리자 아니에요? 저분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 된 신입이에요. 관리자면 신입이 잘 적응할 수 있게 기다려 주셔야죠. 관리자라는 사람이 신입직원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망신을 줘서 사기를 꺾어버립니까? 그게 바람직한 관리자의 모습인가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누가 위고 누가 아랫사람입니까? 직급으로 따지면 당신이 A님 보다 위일 수는 있겠죠. 근데 나이로 따지면 팀장님은 저보다도 10살 이상 어리지 않나요?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어요. 부모님이라고 생각해 봐요. 그렇게 막 대할 수 있나. 그렇게 남들 무시하는 거 결국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건데, 왜 그걸 몰라요?” 팀원들은 나와 K 팀장이 싸우는 걸 보게 되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버버버 거리다가 자리로 돌아간 K 팀장은 퇴근 시간 10분 남겨놓고 미안하다며 나에게 와서 싹싹 빌었다. 다른 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래서 말했다. “뭘 잘못짚으신 모양인데, 팀장님이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A 님입니다. 지금 여기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A 님한테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그리고 오늘 업무 끝나고 저랑 면담 좀 하시죠. 이거 폭언에 해당되는 거 모르시는 거 아니죠 설마?”
그리고 그다음 날, 웬만하면 큰 소리 안 내는 내가 K 팀장과 대판 싸웠다는 소문이 부서 내에 파다하게 퍼졌고, 같은 문제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OO아, 너 좀 멋있다. 진짜 잘했어. 나도 진작부터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못했거든.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네가 대신해 줬더라. 정말 고마워.”
“OO 님, 어제 정말 멋있었어요. 저도 그 팀장 때문에 너무 맘 불편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 일 이후로 한동안 우리 부서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 팀장 녀석이 본성이 나쁜 놈이라 그 평화가 일주일이 채 못 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앞으로도 누군가가, 그것도 사회적으로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당한다면 그때처럼 싸울 것이다. 강자 앞에선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비겁하고 치졸한 사람보단 강자 앞에선 강하지만 약자에게는 부드러운, 강강약약 형 인간이 되고 싶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나쁜 의도를 가지고 깎아내려도 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래서 내가 좌우명처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사는 사자성어가 있다. ‘억강부약’. 강한 자는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준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랬듯, 지금처럼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지. 10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바닷물이 더 이상 모래에 닿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