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개 국어를 할 줄 안다.
공부보단 다른 곳에 관심이 더 많았던 괴짜의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지금 이곳 말고,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가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였는지,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첫 외국 이야기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었는데 책에 나온 그림들은 그동안 봐 왔던 전래동화 속 그림과는 많이 달랐다.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젠간 꼭 저길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어쩌면 외국어 덕후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어와는 뭔가 다른, 마치 혀에 버터 바른 것 마냥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영어의 매력에 풍덩 빠져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과목인 세계지리와 세계사를 통해 영미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니 다른 나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재미가 너무나 쏠쏠했다.
남들 다 수능 준비한다고 책상 앞에 앉아있던 고3 때, TV에서 나오는 중국 드라마를 하루에 두 번씩 보며 중국 문화에 미쳐 있었고, 수능에서는 전혀 중요한 과목도 아닌 독일어를 미친 듯이 파곤 했다.
그래서일까. 남들은 그다지 관심 갖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그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건 그런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일이었다. 그런 지식을 알게 된다고 해서 당장 돈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새롭고 신나는 일이라 그저 좋으니 그것만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 줄 수 있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같은 프로그램을 엄청 좋아한다. 어렸을 때도 그런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보면서 세계여행의 꿈을 키웠으니까.
그런 호기심을 가진 나여서 더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문화 충격받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다. 실제로 당황하거나 머릿속에서 ‘띠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화를 통해 그 나라 말과 사람들에게 친숙해지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만이 정답은 아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계속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틀에 박힌 생각만 하던 어렸을 때에 비해 조금은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문화 충격을 받게 되는 부분을 가리켜, 나는 '띠용 포인트'라는 말을 쓴다. 매번 문화 충격을 받게 되면 이제는 그러려니 할 법도 한데, '띠용 포인트'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도 기억나는 '띠용 포인트' 중 하나는 독일어를 전공하던 대학시절의 이야기다. 3학년 1학기 전공 수업 중 하나인 독일어 작문 심화과정 시간이었다. 2학년 때 어느 정도 회화와 기초 작문, 그리고 문법을 다져놓고 난 뒤라 3학년 때는 편지, 일기, 기행문 등의 실용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 단기 어학연수 다녀온 얘기를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내기 전에 이런 문장을 덧붙였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들어간 그 교실에는 내 나이 또래의 낯선 친구들이 많았다'라고. 그런데 다음 시간에 받았던 노트에는 그 문장이 찍찍 그어져 있고 친구들이 '사람들'이란 단어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원어민 교수님이 덧붙이신 말.
"독일에서는 나이가 같다고 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는 친구라고 부르지 않아요. 친구는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사람을 말합니다. 나이가 같다고 해서 모두 다 친구는 아닙니다."
20대 초반이었던 시절, 나이가 같은 사람이면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며 초면에도 하이파이브부터 했는데 교수님의 그 말씀 한마디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런 '띠용 포인트'는 어떤 언어를 배울 때든, 의사소통을 할 때든 거의 매번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그게 더 심했다.
그런 외국인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업종이 여행업이었고, 여행 가이드로 일하면서 보내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다. 다른 나라에서 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그들과 영어로 또는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도 될 정도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업이 침체기로 접어들어 당분간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많이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쉽게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도 여전히 관련된 책이나 영상 등을 보며 그런 호기심을 채워 나가곤 한다. 유튜브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 등을 다룬 채널의 컨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밤을 새워 본 적도 있고, 종영된 지 한참 지난 ‘비정상회담’은 시즌 1,2를 다 봤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도 자주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지금은 좋아하는 문화의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다. 민간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했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도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안 보는 판소리나 전통 공연 같은 것들이 TV나 유튜브에 나오면 굉장히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관심사는 각 지역마다 다른 우리나라의 토속음식이다. 제주 흑돼지, 안동 헛제삿밥, 전라도 한정식, 대구 막창, 포항 물회, 저 멀리 북한까지 얘기해 볼까. 개성 만두, 평양 냉면,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 즐겨먹었다는 두부밥, 농마 국수 등등. 음식마다 유래가 있고, 그 유래를 찾아내는 것 또한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다.
최근 들어 또 하나 생긴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글쓰기다. 알고 있던 것, 혹은 경험했던 것들을 글로 풀어내면 주변인들이 내 글을 읽고 재밌다고 해 주니까 더 신나서 쓰게 된다. 요즘엔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다른 나라 문화든, 우리나라 문화든 지금 알고 있는 걸 조금만 더 채워서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 졌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외국인들한테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일. 그렇게 되면 앞으로 덕업 일치는 쭈욱 계속되겠지? 꺄오!!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난다.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