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지기 절친의 이야기.

근데, 그 절친이 사람은 아니랍니다. 뭐게~요?

by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은 평생지기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옆을 지켜 준, 때로는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함께했던 친구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미운 정도 고운 정도 참 많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이 친구의 이야기가 꽤나 자주 등장할 것 같아, 오늘은 구독자 분들께 특별히 이 친구를 소개할 시간을 좀 가지려고 한다. 절친이니까.


혹자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땡. 반려동물은 오래 살아봐야 20년이지만 이 친구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30 몇 년을 한 번도 쉰 적 없이 옆에 쭉 있었다. 어쩌면 한 번쯤은 지칠 법도 한데, 한결같은 건지 끈질긴 건지 암튼 참 대단한 녀석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뭔가 구독자 분들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응? 네가 ADHD라고? 난 전혀 생각도 못 했지. 진짜 의외다."라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뭐야, 쟤 정신병자네. 당장 구독 취소하고 거리를 둬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람마다 어느 정도의 산만함은 다 있어. 너만 심각하게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유난히 심각하게 산만한 것처럼 그래? 나도 그 정도 산만함은 있어. 근데도 별 지장 없이 살잖아.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너무 유난 떠는 것 같다 너. 진단도 안 받고 혼자 뇌피셜로 판단 내린 거 아냐? ㅋㅋ"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 "네가 ADHD가 있다 치자. 근데 뭐 어쩌라고? 굳이 그걸 지금 A밍 아웃하는 이유가 뭐야? 너 관종이라 그래? 자, 옛다 관심. 됐냐?ㅋㅋㅋ" 이런 사람들까지. 대충 짐작이 간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꿋꿋이 ADHD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선천적으로 이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청소년기에 치료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지나고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녀석은 날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확정 진단을 받고, 그와 동시에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ADHD가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안 겪어도 될 시행착오를 엄청나게 겪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20대였을 때만이라도 발견했다면 과연 지금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펜을 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처럼 병을 늦게 발견해서 개고생 하지 말라고.


이 친구는 참 짓궂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머릿속을 안개가 자욱한 열두 갈래 길로 바꿔놓는다. 그뿐이랴. 머릿속에서는 열 마리는 족히 넘는 개구리 떼가 개굴 거리면서 울부짖게 만든다. 아주 시끄러워 죽겠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머릿속이 좀 맑고 깨끗하면 좋을 텐데, 이 자식은 절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질 않는다. 거기다 단기 기억력은 엄청 비루해서 거의 휘발유 수준이다. 금붕어 기억력이 3초랬다. 금붕어가 나보다 기억력이 더 좋을 거라는데 내 왼팔을 걸겠다. 아마 누군가 내 단기 기억력과 휘발유 중 누가 더 빨리 증발하는지를 갖고 내기를 한다면, 아마 내 단기 기억력이 분명히 이길 거다.


또 있다.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잠도 안 자고 매진해서 날밤 새게 만드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그 일에 과집중이 가능하다. 근데 의무감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단 5~10분을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버티는 걸 너무나도 힘들어한다. 일이 주어지면 남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쉽게 처리하는데, 나는 그 일에 파묻혀 허우적대고 힘들어한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에, 일의 순서를 제대로 못 잡으면서 생기는 일들이다. 머릿속에서 도파민이나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제때제때 꾸준히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러다 보니, 남의 말을 못 알아듣고 했던 얘길 또 물어보기도 하고,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잔실수가 많다. 처음에야 봐주지, 어느 순간부턴 상사들이 "이거 제가 여러 번 얘기한 거 같은데 기억 안 나세요? 기억 안 나시면 메모라도 하세요." 이러면 머릿속은 순간 하얘져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메모? 하고 싶지. 근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속도가 최소 남들의 2~3배 이상인데, 메모를 하려는 그 짧은 시간에 메모할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니 문제지.


그래서 스스로를 자꾸 자책하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을 치다 못해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가서 반대편으로 나올 것 같다. 이런 느낌은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ADHD가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이번 생은 ADHD 환우로 살아봤으니까, 비 ADHD인으로도 한번 살아보고 싶은 거다. 인생이 무슨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라떼 월드처럼 드라마틱한지. 좀 조용히 살고 싶은데 ADHD가 가만히 놔주지 않는다.


친구야, 제발 부탁인데 좀 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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