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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불구하고 Oct 02. 2020

다 비슷할 것 같죠?

근데 천차만별이예요. 다 달라요.

처음에 ADHD를 앓고 있다는 걸 주변에 알리고 페북에도 공개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이거였다. 아니, 지금까지도 주변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네가?"


응, 내가.


초반에도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내 머리는 말과 글에 특화되어 있는 전형적인 문과형 머리다. 그래서 단어를 외우는 기억력이나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부분만큼은 빠르다. 그게 생판 처음 배우는 희귀한 외국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어떤 단어에 대해서는, 책에서 스쳐 지나치듯이 봤다고 하더라도 그 단어의 라틴어 어원까지도 기억이 난다. 10년 이상 안 쓰고 있던 전공언어인 독일어라도, 독일어를 쓰는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면 마침 배우고 있던 사람처럼 머리에 있던 내용을 떠올리고 바로 문법에 따라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현지인들과 그들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걸 실제로 본 사람들은 날 엄청 신기하게 생각한다. 책도 남들이 못 잡아내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찾아내는 재미로 읽고, 만약 그런 걸 발견하기라도 하면 엄청난 쾌감과 희열을 느낀다.


그런데 잘 알거나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여러 번을 말해도 기억력이 초기화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기억을 못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과 관련하여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저게 가능해?'라고 말할 만큼의 성과를 낸다. 나의 경우는, 1년 동안 폴란드어를 독학해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던 게 그 대표적인 예다. 근데 그게 아니라면 '저 사람 왜 저래?' 싶은 소리가 나오게 행동하기도 한다.


신기한 건, 이 병의 증세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거다. 그래서 자폐증 환자들처럼 스펙트럼이라고 얘기하는 거고. 네이버 영한사전에서는 스펙트럼을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다. spectrum:(관련 특질·생각 등의) 범위[영역]이라고.


ADHD 환자들 중, 재능을 아예 발견하지 못해서 사회 부적응자 내지는 사회적 실패자로 각인되어 살아가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반대로 가진 재능을 잘 살리게 되면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되기다. 이 모든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ADHD 환자라는 거다. 나도 그들의 범주 중 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고.


연예인을 예로 들어 얘길 하자면, 노홍철 씨나 박명수 씨, 기안84 등을 들 수 있다. 노홍철 씨는 모 프로그램에서 성인 ADHD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특유의 정신없음과 격정적인 리액션이 특징이다. 하지만 정리는 진짜 깔끔하게 잘한다. 정리벽이 있다고 할 정도로.


박명수 씨는 중간중간 불쑥 주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화가 기안84도 그림에는 재능이 있지만 다른 분야에선 특유의 어수룩함이 눈에 띈다. 그런 증상들은 ADHD의 범주에 들어간다.


아! 기안84의 여혐 논란에 대해 말씀드리는데, 그건 개인적인 그 사람만의 특성이며 모든 ADHD 환자들이 특정 성별이나 소수자 또는 약자를 혐오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성인 ADHD 환자로 구성된 블로거 모임인 에이앱(www.a-app.co.kr)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을 정해 두고 이 내용들을 준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모임 내에서 '종성외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과 서로를 존중해주고 아껴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종성외정'이라는 말이 무슨 사자성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사실 별 거 없다. 종교, 성별, 외모, 정치의 앞자를 딴 것일 뿐이니. 근데 사실 이런 부분은 비단 ADHD 환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민해질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어디에 가서도 안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긴 하다. 괜히 격한 감정이 들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문제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얘기가 잠시 딴 길로 샜는데 어쨌든 요점은 이런 식으로 증상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의 경우는 아동이 보이는 증상과는 또 많이 다르다. 이 차이점은 언젠가 <아동 ADHD와 성인 ADHD의 증상의 차이>라는 주제로 좀 더 구체화시켜서 다시 다룰 예정이다.


다음번에는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스펙트럼 내에서도 ADHD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써보겠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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