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 맞서는 시작 2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2
사랑이란 그런 것일까.
정말 사랑한다고 하고,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처럼 굴던 사랑이란 존재는
한순간에 차가운 드라이아이스처럼 바뀌어
연기처럼 사라진다.
언제 그런 존재가 있었냐는 듯,
언제 그런 추억들이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깊은 상처로 가슴속에 흔적으로만 남겨지게 된다.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나는 휴대폰 정리를 하지 못했다.
시부모는 차단했지만,
아이 때문에 매주 봐야 하는 아이아빠는 차단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가끔 뜨는 것도 무서워,
그 사람을 <** 부>라고 저장해 두었다.
아이의 이름이 뜨면 아이가 연상되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 정리는 달랐다.
다시 옛 사진들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아빠랑 우리 셋이 이런 행복한 날들도 있었어"
라는 하얀 거짓말과 함께 나중에 보여주기 위해 남겨두기도 해야 했다.
후에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는 가정에서 태어났는지를 알려주고 싶어, 남편의 사진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들을 지워야 하고 남겨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아서 회피했다.
이번 기회에, 용기를 냈다.
이년만에 사진첩의 갤러리의 스크롤을 최대한 아래로 내렸다.
순차적으로
아이아빠의 사진, 시부모 사진, 우리 둘의 사진을 지웠다.
그다음엔 아이아빠와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들도 대다수 정리했다.
셋이 찍은 가족사진은 남겨두었다.
나의 욕심이지만,
난 내 아이가, 본인이 정말 사랑받고 컸음을 알며 자라길 바란다.
서로 사랑하지도 않는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자녀는 얼마나 불행할까.
인격적으로 훌륭하지 않은 부모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녀의 자존감은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은,
아이에게 <너는 사랑과 축복 아래서 태어난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것>,
그리고 너의 부모와 조부모는 다 <성격과 성향이 다를 순 있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고 널 사랑한다는 것>
이것을 지켜주기 위해, 나는 나에게 상처 준 그들을 아이에게 옹호하고 좋은 분들이라며 포장한다.
지금껏 내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부분이다.
아이에게 그들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
엄마이기에, 난 엄마니까.
사진정리를 하며,
글쓰기를 생각했다.
나의 유년시절과 결혼생활은
내가 덮고 살고 싶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둘 꺼내고
한 개씩 새로 씻고
버릴 것은 버리고 분리수거해서 정리를 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직은 젊고,
아이에겐 당당하고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엔 나도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다.
행복할 자격이 모든 사람에게 있듯이,
나에게도 행복할 자격이 있길 바란다.
덜 불행함에서 벗어나 행복함이란 곳에 한 발짝 딛기 위해서는 그동안 노력하지 않은 회복에 대한 노력을 해야겠다.
나의 글쓰기가 도움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