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by 떼구르르

오늘의 마음을 다 썼다. 유독 지치는 날이라, 오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정신이 맑아져 그냥 책상에 앉았다. 두고 온 일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걸까, 곰곰이 생각하는 중이다.

일은 가끔 두고 온다. 오늘의 집중력을 다 쓰면 굳이 내일의 집중력까지 끌어다 쓰진 않는다. 그러니, 내가 두고 온 일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썼던 일을 되짚어본다.


학생설명회 회의를 하며,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 고등부까지 데리고 올라가면 좋겠다는, 설렘이 솟았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수업 직전까지 빠듯하게 수업준비를 했다. 그러던 와중에 일찍 온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영 만족스럽지 않다.

교실에 들어오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다. 아이에겐 당황하지 않은 척, 이름을 물어보고 지원실에 문의했다. 다른 반에서 넘어왔는데, 전산상 처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닌데, 뭐.

한 아이가 수업에 오지 않았다. 개인사정이 있단다. 얘기하기 어려운지 물어보니 그렇단다. 짐작 가는 것이 있어 더는 묻지 않고 내일 잠깐 시험 보러 오라고 했다. 마음이 쓰였다.

어떤 아이는 숙제가 엉망이었다. 이럴 애가 아닌데, 사는 데 의미가 없단다. 재미있는 것도 재미있지 않단다. 그럴 때가 있지. 조금 얘기 나누고 나머지공부시키고 집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보냈다. 마음이 쓰였다.

어떤 아이는 테스트 검사를 받지 않고 튀었다. 연락도 받지 않는다. 다음에 또 죄송하다며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늘어놓겠지. 내가 포기하면 얜 포기받는 경험만 또 쌓일 텐데. 마음이 쓰였다.

숙제를 잘해오는 몇몇 아이들이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혼내려다 숙제가 과했나 싶어 마음이 쓰였다.

다른 반으로 가는 아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냈다. 레벨 업해서 다시 나한테 꼭 오겠다는데, 그냥 가서 적응 잘하면 좋겠다. 어차피 아이들은 금방 잊고, 적응한다. 나와 같이 했던 수업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거지만, 섭섭하고 속상하다. 마음이 쓰였다.

마음을 덜 써도 되었을 일을 추려본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었을 일도 추려본다.

수업준비를 빠듯하게 한 탓이 가장 컸다. 부족한 수업준비 메꾸느라 마음이 줄줄 새어 나갔다.

난 사실 수업준비가 즐겁다. 글 읽으며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배워갈지 고민하는 것도 즐겁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근무시간에 욱여넣으려고 노력하는 순간, 과정의 즐거움이 사라지며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일을 왜 그렇게 많이 하냐는 물음, 왜 집에 안 가냐는 물음, 그렇게 할 필요 없다는 조언, 이렇게 하는 게 낫다는 조언에 념한 탓이다.

내 마음을 위해 좋아하는걸 당당하게 좋아하는 고집도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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