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 살렘의 닭아 울어라
예수를 부인하던 베드로의 눈물 - 예루 살렘의 닭아 힘차게 울어라
오늘도 너는 조소와 모멸로서 침 뱉고 뺨 치며 위선이 선을 능욕하는 그 부정 앞에 오히려 외면하며 회피하므로써 악에 가담하지 않았는가.새벽이면 새벽마다 먼 예루살렘성에 닭은 제 울음을 기일게 홰쳐 울고, 내 또한 무력한 그와 나의 비굴에 대하여 심히 사모치는 분함과 죄스럼과 그 자책에 눈물로서 눈물로서 벼개 적셔 우노니
- 유치환, 예루살렘의 닭
1991년의 5월이었다. 서울 거리는 온통 매캐한 최루탄이 터지고 동년배 학생들과 시위가 한참 벌어지고 있었다. 경찰들의 눈을 피해 뒷골목으로 뒷골목으로 도망치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가방을 수색받는 날이면 괜스레 식은땀이 흘렀다. 무표정하게 놓아주는 경찰을 뒤로하며 눈동자를 굴리며 빠져나오던 순간 나는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광장으로 달려가 목소리 높여 민주와 정의를 외칠 용기도 없이 도서관 주변이나 서성거리며 먼발치에서 민주화를 지켜보던 미안함이 오랫동안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유치환의 ‘예루살렘의 닭’이란 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예수라는 사람은 알지도 못한다고 둘러대던 나약한 인간. 그리고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정하리라고 말했던 그의 스승 예수의 말이 생각나 통곡하던 베드로의 눈물이 나를 옭아 매고 있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던 예수에게 내가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 그러나 예수가 잡혀가자 그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고 철저히 예수를 부인한다. 그때 예수의 말처럼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베드로는 예수가 자신을 부인하리라고 말한 게 생각나 밖에 나가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마태복음 26장)
카라바조의 명작 ‘베드로의 부정’은 권력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비굴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림 속의 베드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그 눈물은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나약한 인간의 것이고, 죽음에 초연히 걸어가는 성자들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주름진 소박한 얼굴과 공포의 표정, 그리고 눈망울 가득 맺힌 눈물에서 문 열고 나가면 만날 것 같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저씨들이 보인다. 세속을 초월한 성자 아니라 겁먹은 베드로에게 흐르는 양심의 눈물은 영웅이 되지 못한 인간의 정겨움으로 느껴지고, 뭔가 가슴속이 먹먹해지는 감동으로 밀려오는 듯하다. 그날 새벽 예루살렘의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통곡하는 베드로를 상상해 본다.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는 베드로의 울부짖음은 자신을 다시는 비굴함의 구덩이로 내던지지 않겠다는 각오의 시간이었을 것이요, 더 이상은 권력의 공포에 무릎 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거듭 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을 듣던 그 자리, 양심의 소리에 나약한 자신을 질책하며 울부짖던 그 자리에는 훗날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이 교회의 지명 ‘갈리칸투(Gallicantu)’는 라틴어로 닭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말로써, 닭이 두 번 울기 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3번 부인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되었다. 그리고 이 교회의 꼭대기에는 베드로가 통곡하던 새벽을 상징하기 위해 닭이 세워져 있다. (출전) 베드로 통곡 교회 [St. Peter in Gallicantu]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1571년 추정 ~ 1610년)는 20세기에 와서 다시 각광받게 된 거장이다. 미켈란젤로와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그가 소년 시절에 살았던 지명을 따서 일반적으로 카라바조라고만 불린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격정과 일탈, 세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형상화하는 능력을 가졌던 한마디로 희한한 사람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그는 정서불안에서 비롯된 제멋대로인 성격과 천부적인 재능, 선술집에서의 폭음과 격렬한 싸움, 그리고 많은 빚과 음침한 친구들, 반복된 투옥, 살인 혐의, 수년간의 도주생활, 때 이른 죽음 등 천재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항목들을 완벽하게 갖춘 가장 찬미받는 회화의 반항아들 중 한 명이다. 그의 회화 양식은 부분적으로 서툴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티가 났지만, 카라바조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참신하고 강력하며 대담한 자연주의로 채워,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 결과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라고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생겨났다.
동시대인들은 그를 “악마적 천재”, “회화의 반그리스도”라고 불렀고, 19세기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은 “추악함과 공포, 죄의 오물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보헤미안이자 반항아였던 그는 사회의 낙오자들과 주로 어울렸다. 그에 대한 경찰의 신원조회를 참고해보면, 그가 선술집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노름판에서 상대방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후 살인죄로 기소당할까 봐 로마로 도망쳤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어떤 충고나 지시도 듣지 않고 더러운 거리와 비참한 삶에서 자기 예술의 근원을 찾았다.
카라바조의 원근법은 보는 이를 그림 속의 사건으로 끌어들인다. 명암법은 극적인 빛의 대조를 통해 감정적인 효과를 더욱 강렬하게 하고 있다. 한 곳에서 발산되는 연극 조명 같은 빛은 보는 이의 관점을 그림의 전방에 펼쳐진 사건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카라바조는 배경을 어둡게 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을 ‘일테네브로소(iltenebroso : 암흑 양식)’이라고 부른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그림들은 의뢰인들이 외면할 만큼 '천박하고 불경하다 ‘고 여겨졌다. 그중 가장 큰 논란에 휘말렸던 작품은 '동정녀 마리아의 죽음(1601~1606)'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죽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강에 투신자살한 창녀를 실제 모델로 삼았기에 더욱 논란이 되었다. 시체로 누워 있는 여인의 배는 약간 부풀어 있는데, 강에 며칠간 잠겨있었기에 부패와 더불어 가스가 차올라 배가 부어오른 것이다. 치마 끝에 드러난 다리 역시 물에 잠겨 불어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성모 마리아의 거룩한 죽음을 가장 속된 여인의 주검을 끌어들여 형상화해낸 것이었다. 이 그림의 주문자였던 사람은 매입하기를 거절했으나 만토바 공이 자신의 궁정화가인 루벤스의 충고로 이 그림을 사들였다고 한다. 폭풍우 같은 인생을 살았던 그는 결국 3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사람들이 카라바조에게 천재적 영감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묻자 그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고 한다.
나의 영감은 바로 저 거리를 다니는 가난하고 평범하며 속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두 손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고 있다. 십자 땅에서 돌을 파낸 뒤,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의 모습도 표현되었다. 돌은 베드로의 굳건한 믿음을 상징하며,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는 예수의 말을 상징한다. (CARAVAGGIO The Crucifixion of Saint Peter 1600-01 Oil on canvas, 230 x 175 cm Cerasi Chapel, Santa Maria del Popolo, Rome)
다시 베드로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베드로는 예수가 사망한 뒤, 사도가 되어 예수의 가르침을 전했다.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자, 주위 사람들은 베드로를 권력의 탄압을 피해 로마 밖으로 탈출시킨다. 안전한 곳을 찾아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고 걸어오는 예수의 환영을 만났다고 한다.
“쿼 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네가 나의 백성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려 하는 고로 내가 너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향하느니라”
그 순간 베드로는 다시 한번 예수를 부인하던 그날 밤을 떠 올렸을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 자신을 비굴함으로 내던져 버리지 않겠다고 울부짖던 각오를 되새겼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닭 우는 소리는 단지 시간상의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 속에 메아리치는 깨달음의 외침이라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결국 자신의 종교적 깨달음을 완성하기 위해 발길을 돌렸고,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예수와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형을 받았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닭울음소리를 들으며 울부짖던 베드로는 결국 권력의 공포를 이겨낸 승리한 인생으로 마감되었다. 그의 순교 위에 가톨릭의 역사가 쓰였고, 그의 시신 위에 현재 교황청인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닭은 인간의 삶을 바꾸는 깨달음의 부름이요, 두려움과 비굴함을 디디고 양심 속에 살아오는 진리의 외침이다. 그 벅찬 울림에 베갯머리를 적시며 흐느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베드로의 눈물은 인간이 정신적 비약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참회의 눈물이다.
위대한 영혼으로의 탈바꿈을 위해 예루살렘의 닭아 힘차게 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