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아빠와 장례에 대해 이야기 한 다음날
죽음을 말하는 상실의 시대를 마저 다 읽었다. 이번 추석은 기묘하다.
지난번 본가에 내려왔을 때 다 읽지 못한 상실의 시대를 완독했다. 십 년 전에 읽었던 책을 책장에서 발견했고 30대가 되어서 다시 읽은 소설이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고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와닿았다. 평소엔 생각도 나지 않던 옷을 방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해 걸쳐 봤더니 나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 그 뒤부터 가끔 챙겨 입게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레이코와 와타나베가 요양원 창고에서 포도를 먹으며 대화하는 장면을 읽으니 갈증이 났다. 엄마가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놓은 포도가 생각났다. 읽고 있던 책을 테이블 위에 잠시 뒤집어 놓은 뒤 부엌으로 가서 시원한 포도를 꺼낸다. 다시 소파에 앉아 달달한 열매를 까먹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갈증이 조금 가셨다.
추석연휴 직전 토요일,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했다. 음식을 차리고 먹기 시작한 것은 오후 7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예전에 내가 사두었던 전통주를 꺼냈는데 매끈한 갈색병에 한자로 크게 ‘일품’이라고 쓰여 있는 40도짜리 안동소주였다. 두꺼운 붓글씨체로 병 한가운데에 쓰여 있는 ‘일품’. 도대체 얼마나 품질이 좋길래 이렇게 강조를 했을까. 맛없기만 해봐라 따위의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병뚜껑을 돌렸다. 나는 토닉워터로 희석해서 먹었고 아빠는 맥주와 섞어 마셨다. 오랜만에 본 아빠의 얼굴은 많이 탔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당신의 얼굴에서 덥고 치열했던 2024년도의 여름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밥을 다 먹고 가족들과 술을 더 마시고 싶으셨던 모양인지 아빠는 나에게 편의점 가서 맥주를 몇 캔 사 오라고 했다. 8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티비에서는 귀경길에 밀린 차들이 기차처럼 차례로 늘어서 있는 화면이 계속해서 비춰지고 있다. 나는 토닉워터랑 먹을 거라 괜찮고 집에 맥주는 한 캔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그럼 그걸로 충분해."
아빠가 말했다.
실온에 두었던 맥주가 미지근했기에 안주를 준비하는 동안 젖은 키친타월에 맥주를 싸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두었다. 350ml 짜리 작은 캔이라 꽤나 빨리 차가워진다. 집에 있는 과일과 육포를 거실로 가지고 나온 직후부터 2차가 시작됐다.
40도짜리 안동소주는 맥주를 다 섞어먹은 뒤에도 꽤나 남아서 당신은 급기야 물과 섞어마시기 시작했다. 주량이 예전 같지 않은 아빠는 금세 말이 많아진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로 넘어갔고 급기야 가족묘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나는 우리 가문이 몇 년 전부터 평장(봉분을 만들지 않고 화장하여 평평하게 매장함)을 하게 되었고, 가문 묘소를 현재 삼촌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사 알았다.
현재 우리 부모님 대까지는 묘소의 위치도 이미 정해져 있고 터가 매우 넓어 내 세대까지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사촌 형님들 몇명이서 평장을 반대했는데 친할아버지가 강하게 밀어붙였고 가문 묘소를 전부 하나로 모으고 정리하는 역할을 하셨다고.
“너희 할아버지가 정말 대단한 분이시지….”
“너희 삼촌도 참 대단한 분이고….”
술을 마시니 아빠 입에서 나오는 대단한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할아버지랑 아빠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원수 같은 관계라 생각했는데 부모 자식 사이는 오묘한 법이다. 그러고는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오는 가족 구성원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한다. 처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가령 내 증조할머니가 증조할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가 돌아가신 후 재혼한 상대였다는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할아버지는 아들 넷 딸 하나 중 막내로 태어나셨는데 그 대에서 현재 유일하게 살아있는 어르신이다. 명절만 되면 아빠 사촌 형제들이 우르르 할아버지 집에 모여 인사를 드리곤 하는데 어릴 적 타이밍 좋게 마주치기라도 하면 용돈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받은 돈을 색색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에다가 넣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있었던 한복과 세트였던 복주머니였는데 지금은 어디갔는지 알 수 없다.
시끌벅적한 집안에서 누가 봐도 같은 혈연으로 보이는 생김새의 어르신들끼리 명절마다 항상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집성촌이었던 수곡리에 자리 잡은 가족묘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나 크나큰 화두이길래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에서 항상 그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건가. 어른들은 살아있는 현재에 관심이 없고 죽고 없는 사후가 그렇게 중요한가 보다 항상 냉소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들은 아빠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사후 처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만의 연대에서 비롯된 아주 중요한 것에서 파생된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한다.
“너희들은 모르지. 고향에서 사촌들이랑 뛰어놀았던 아빠 같은 사람도 있어. 지금의 너희들이 무얼 알겠어.”
아빠는 자조적으로 말하더니 술을 몇 모금 더 마셨다.
아빠가 취해갈수록 흡사 영화 인셉션의 꿈의 단계를 지켜보듯 점점 깊고 세밀한 당신의 속마음이 내 머릿속 브라운관에 비쳐 보인다. 1단계가 사촌 형제들과의 관계와 유대감에 대한 장면이었다면 2단계는 당신과 엄마가 죽더라도 제사에 대한 부담 같은 건 갖지도 말고 제사 따위 하지도 말라고 자식에게 말하고 싶었던 욕구를 마구마구 풀어내는 장면이다. 엄마는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애들한테 부담이 되는 거 모르냐며 질색을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살아계신 마당에 본인이 죽고 난 뒤 제사까지 생각하는 아빠의 사고가 나와 너무 다름에 묘한 기분이었다.
안주 접시에 있는 바싹 마른 적갈색의 육포와 각져 있는 깎인 과일들이 점점 바닥을 보인다. 유리컵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물방울이 흘러내려 나무 테이블에 계속해서 닿길래 휴지를 한 장 뽑아 유리컵 밑에 깔아 두었다. 아직 9시도 안된 초저녁에 벌써 취해버린 아빠의 모습을 오랜만에 본 터라 적잖이 재밌었다.
원래 아빠는 말주변이 없고 자기 생각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는 타입이다. 엄마는 남한테 부탁이나 아쉬운 소리 같은건 일체 하지 않고 참다가 압력밥솥이 터지듯 꼭 뜬금없는 시점에 터뜨린다. 둘의 방식이 옳든 아니든 남들이 오해할 만한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서로 자기가 맞다고 평생을 우겨대니 참 답답하기 그지없다. 내 성격은 엄마와 아빠를 둘 다 닮았기에 당신들 모두가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부모님의 제사에 대한건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아빠의 말을 들은 직후부터 부모님 사후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면 미도리처럼 행동할 것 같다고 다음날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생각했다. 죽음을 너무 많이 겪어 아버지가 죽었어도 별 느낌 없다고 말한 미도리. 죽기 전 가족에게 최선을 다한 미도리. 가족이 죽은 후 자기는 무조건 행복하게 살 거라고 다짐했던 미도리. 그 소설에서 가장 ‘정상인’ 같았던 미도리. 그래야 하는 미도리. 그러나 내가 간과한 건 그런 미도리도 집 한켠에 아버지를 위한 제단을 만들고 죽은 아버지를 위해 합장을 했다는 거다. 당신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 내 모습이 어떨지만 생각했지 당신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따위의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이기적인 걸 수도 혹은 오지 않은 까마득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일 수도. 난 아빠처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웃겼던 사실 한가지 더. 수곡면에 있는 수십 개의 가족묘 앞에 대표로 묵념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는 아빠 말을 듣고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작지만 확실히 지나간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