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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Oct 28. 2021

작심사일만 하기, 2일 차

 나는 누구?


 '작심사일만 하기' 둘째 날이다. 동시에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날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무서워 외식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배달음식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먹고 있었다. '식구(食口,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라는 말대로 우리 4명이 진짜 식구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모처럼 남편은 지방 출장을 , 아이들은 배움터로 흩어졌다.  혼자다. 얼마 만에 누리는 자유인지 모르겠다. 어찌  좋을 수가 있겠는가. 너무 좋아서 죽겠다. 자유시간에 자전거를 타러 밖으로 나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냥 집에 눌러앉아 포털에 올라와 있는 재밌는 영상들을 소비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침부터 힘든 일은  하고 싶다. 작심사일만 하기, 2 차에 맞은  위기, 내가  위기를  넘길  있을까?  

 

 물론, 나는 잘 넘길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단 하나의 큰 목표를 위해서라면 당장의 욕구쯤은 미룰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을 평소에 잘 세워두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다. 내가 믿는 대로 뇌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혹을 이길 수 없어. 나는 약한 사람이니까'라고 나를 규정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좋아할 만한 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누구인지 손에 펜을 쥐고 종이에 적어보자. 그리고 소리 내서 읽어보자.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야' '나는 야채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는 잘 웃는 사람이야'

 글자를 쓰고 있는 손의 정교한 움직임과 종이에 써진 글자를 보고 있는 100만 개의 시신경세포들과 울림에 민감한 청각세포들이 우리의 뇌를 자극한다. 자주자주 자극할수록 뇌는 그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아침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좋아하는 네모반듯 방안 노트에 써보길 잘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전전두엽이 습관의 노예가 된 나를 설득하며 말한다. "너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잖아. 또 너에게는 반드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잖아. 편안하게, 습관대로 살면 목표를 이룰 수 없어. 더 늦기 전에 준비하고 일어나자." 그래, 너의 말이 맞아. 나에게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가 있어. 그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어.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야. 그만 늑장 부리고 이제 그만 나가자. 오늘도 나는 정체성의 힘을 체험한다.



 나만의 장소는 어디?


 나오니까 좋다. 이게 진짜 자유라는 것을 실감한다.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개미지옥 같은 집안일에서 자유, 의자에 앉으면 일어나기 싫은 의자 중독에서 자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는 핸드폰에서 자유다.  

 장소는 기억을 소환한다. 스타벅스에 가기 전에 나는 결심한다. '오늘은 콜드 브루 라떼 말고 다른 음료를 시켜야지' 하지만 스타벅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바닐라 콜드 브루 라떼가 생각난다. 콜드 브루 라떼 위에 올려진 달짜근한 휘핑크림, 한 모금 마셨을 때 입 안에 퍼지는 은은한 바닐라 향과 혀에 짝 달라붙는 우유의 고소함, 생각만 해도 뇌에서 행복 호르몬(도파민)이 나와 나의 오감을 자극한다. '새로운 음료를 마셔보자'는 나의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또 바닐라 콜드 브루 라떼를 주문한다.

 

 이 루틴에서 벗어나려면 장소를 바꿔야 한다. 나의 하루를 활기차고 다채롭게, 건강하게 채워줄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작심사일만 하기, 2일 차' 나의 삶을 빛나게 해 줄 나만의 장소를 찾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 어제는 난지공원, 오늘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무작정 안 가본 곳, 암사둔치 생태공원으로 간다.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잠수교를 건너 한강 북단에서 남단으로 건너간다. 한강공원 잠실지구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탄천 합수부, 잠실 한강공원, 한강공원 광나루지구까지 쉬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오늘도 그림 같은 풍경이 나를 반겨준다. 내 입에서 쉬지 않고 감탄사가 나온다. '와,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저 강 좀 봐'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이 맛에 자전거를 타는구나' 탁 트인 강을 보면서 달리는 기분이 황홀하다. 페달링을 할수록 내 신체 에너지는 줄어든다. 그래도 괜찮다. 행복 에너지가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왕복 30km가 조금 넘는 싸이클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몸은 피로한데 마음은 솜뭉치처럼 몽실몽실 가볍다. 몸은 고단한데 마음은 유쾌하다. 내가 환기되면 내가 있는 곳의 공기도 바뀐다. 집 안에 들어서는데 더 이상 오전의 그 집이 아니다. 오전의 집은 일어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절망의 늪 같았다. 이런 집이 오후에는 긴장의 끈을 늦추고 피로의 짐을 풀어놓고 차분하게 앉아 새로운 내일을 계획하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있다. 장소는 같은데, 공간이 주는 느낌과 공기가 완전히 다르다.


 집에서 남편과 다투고 화가 나서 무작정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밖에는 늦은 가을, 추위를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는 '응어리진 분노가 사그라들 때까지 숨어 있을 나만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화가 누그러진 다음에 남편과 아이들을 봐야 화로부터 가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늘 하던 대로 가까운 서점까지 걸어가 책 구경을 했다. 늘 하던 대로 어둑한 남산 공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전화 한 통 없는 남편에게 심통이 나서 집에 안 들어가고 싶었지만,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밤 10시, 집에서 나온 지 6시간 만에 나는 항복하고 집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남편은 일하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또 화가 난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의 잘못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남편의 마음을 다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남편과 나, 둘 다 똑같다. 남편이 내 마음을 몰라서 화가 났다는 것은 핑계다. 이 넓은 세상에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과 환경에서 잠시 도망쳐 쉴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 숨죽이며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만의 장소를 찾아 길거리를 배회하지 않는다. 대신 자전거를 탄다. 한강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는 자전거 위가 나의 피난처다.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두 발로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가면 밝은 해님과 항상 신난 바람과 넉넉한 강물이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내 마음도 이들을 닮아 있다. 덩달아 나도 밝아지고 흥이 넘치고 넉넉해진다. 덕분에 사춘기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중2 둘째, 공부의 짐이 많은 고1 첫째 아들과 큰 갈등 없이 지내고 있다.


 세상은 정말 넓다. 이 넓은 세상에 나만의 장소를 마련해 보자. 자주 가는 카페, 자주 찾는 서점, 걷기 좋은 거리, 나만의 책상, 강이 보이는 공원 의자 등...... 어디든 좋다. 당신도 나처럼,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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