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마루 Oct 21. 2021

작심사일만 하기, 1일 차

 젊음, 그게 뭐 별건가


 자전거와 함께 하는 나의 두 번째 챌린지, '작심사일만 하기'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내가 완전한 숫자 칠 일이 아닌, 삼일에서 딱 하루 더한 사일을 선택한 이유, 사일이라는 기간이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일의 '4'가 한 번 시도해 볼만한 만만한 숫자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넘기 힘들어하는 삼일의 고비를 당당하게 넘어서 나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봐, 나도 할 수 있지!"

 그러고보니 스무 살에도 하지 않았던 도전을 마흔 넘어서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크크크" 그러다가 정색을 하고 나에게 묻는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누가 알면 '이 철딱서니 없는 아줌마야'라고 혀를 차려나?" "그러면 뭐 어때, 이게 나라는 사람인데..." 그리고 다시 호탕하게 웃어본다. "하하하"

내가 아는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겨우 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용기를 내서 뭔가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용기를 낼 정도로 해 보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 마흔을 살짝 넘긴 나에게 하고 싶은 일, 이뤄 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 수명을 다한 줄 알았던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회춘한 느낌이라고 할까.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에서 말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한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이 있다.
인간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마흔 살에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다.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에 이끌려 안이한 마음을 뿌리치고 당당하게 도전하는 청년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자전거와 함께.


 행복, 그게 뭐 별건가


 오늘은 '작심사일'의 첫날이니까 가볍게 타보자. 목적지는 남편과 내가 늘 가는 코스, 월드컵 공원이다. 월드컵 공원은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눈 바로 앞에서 흐르는 강이 일품이다. 여기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걷고 있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다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멈춘 시간 옆에 나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뇌와 가슴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 틈으로 싱그러운 공기가 들어와 나의 뇌를 메우고 있는 오만가지 생각을 밀어낸다. 어디에도 때묻지 않은 청량한 공기는 과도한 책임감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나의 마음도 말끔하게 씻어 준다.

  

 심리적 샤워('나라는 식물을 찾기로 했다' 108p) 시간을 찾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월드컵 공원으로 간다. 이 짧은 여행에 자전거 외에 함께 하는 친구들이 더 있다.

 Garmin에서 나온 손목시계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섬세하게 현재 속도, 평균 속도, 순간 최고 속도를 알려준다. 나는 Garmin이 알려주는 속도를 보면서 속력을 조절한다.

 Garmin이 나의 페이스 메이커라면 헬멧은 나의 목숨을 지켜주는 친구다.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는 나의 과실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과실로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다.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로부터 나를 지켜 주는 게 바로 이 헬멧이다. 헬멧 없이 자전거를 타시는 분들을 종종 본다. 나를 지켜주는 헬멧은 꼭 쓰자.


 헬멧을 쓰고 Garmin을 bike 모드로 맞춘다. "얘들아, 이제 가볼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안장 위에 올라탄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자전거도로로 진입하기 전 반드시 좌우를 살펴야 한다. 그냥 끼어들었다가는 다른 자전거와 충돌할 수 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다.

 주말 뒤 처음 맞는 아침이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다. 4월의 이른 아침, 미세먼지도 없다. 시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리가 없건만 모든 게 선명하다. 미세먼지에 가려 제 색깔을 내지 못하던 사물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되찾은 느낌이다. 바람이 상쾌하다.


 "와, 너무 좋다."

 "행복이 뭐 별거냐. 이게 진짜 행복이지."

 "와, 너무 행복하다."


 두 번째 챌린지를 시작하는 첫날의 소감 치고 너무 빈약한가? 내가 갖고 있는 언어 주머니가 작아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너무 좋다'는 단어에 담긴 내 마음은 '순도 100%'라고 단언할 수 있다.

 행복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면, 그날 내가 맛본 행복은 진짜 행복이었다. 지금 여기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나' 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다른 게 필요 없는 꽉 닫힌, 꽉 찬 행복이었다. 행복한 감정 말고는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나의 DNA가 유일무이한 것처럼 내 안에 심긴 행복 코드도 유일무이하다.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이 사실을 아는 건 중요하다. 내 안의 행복코드를 모르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탐내게 된다. 행복한 사람이 나눠주는 행복을 받아먹고 잠깐 행복을 느낄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그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먹고 나면 마음은 금방 고프고 기분은 더 우울해진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가 행복을 동냥하는 이 고달픈 삶을 끝내려면 내 안의 심긴 행복 코드를 찾아야 한다. 행복 코드가 없다면 이제부터 심으면 된다. '나는 언제 행복하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몸에 저장된 행복이 많은 사람은 바로 답이 튀어나오겠지만, 남의 행복만 좇아다녔다면 어려운 질문이 될 것이다. 그때는 펜을 들고 하얀 종이에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적어보자.


부드러운 거품이 올려진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안 써지던 글이 갑자기 술술 써질 때, 친하지 않은 이웃이라도 내가 먼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때, 남편과 아이들보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동네 공원을 걸을 때, 심장박동수가 한계치를 넘나드는 힘든 운동을 마치고 씻을 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필사할 때,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나의 가슴을 때리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집에서 키우는 야레카야자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볼 때,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밝은 광장 인증센터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라떼를 마시며 강을 볼 때, 첫째 아이가 중간고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갑자기 나를 안아줄 때, 입이 까다로운 둘째 녀석이 '이거 엄마가 한 음식 맞아요? 정말 맛있는데요.'라고 말하며 열심히 먹을 때, 저녁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걸어서 남산의 1 전망대까지 올라가 서울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볼 때, 맑게 갠 하늘을 볼 때, 내 몸에 맞는 음식을 먹을 때,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반짝반짝 빛나는 화장실을 볼 때, 깨끗이 정리된 싱크대를 볼 때, 내가 좋아하는 원목 의자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그때의 순간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두 번째 챌린지를 시작하며 나만의 행복 노트에 한 개의 행복을 더 써 내려간다.

 

 서른 살 즈음, 둘째를 임신하고 얼마 안돼서 당뇨를 만나 마음이 슬펐다. 100명 중 7명이 임신성 당뇨에 걸리고, 이 중 절반이 출산 후 5년에서 10년 이내에 당뇨가 재발한다는 통계가 있다. 내가 그 7%에, 그 7%의 절반에 들어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당뇨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못 먹고, 늘 소식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 나의 삶이 마치 감옥처럼 여겨졌다. 나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당뇨 덕분에 자전거를 만났고, 자전거 덕분에 내 안에 숨겨진 행복코드를 찾게 되었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맞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은 감사다. 행복하니,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된다. 감사하면 또 행복하다.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행복과 감사는 함께 굴러간다. 자전거 하나 배웠을 뿐인데 행복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작심하고 하루 더 해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