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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Nov 10. 2021

작심사일만 하기, 마지막 날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2021년 4월 29일 목요일, '작심사일만 하기' 챌린지 마지막 날이다. 오늘이 지나면 목표 달성이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다. 오전에 비 소식과 오후에 황사 예보가 있다. 잠깐 내리고 마는 비고, 황사는 오후에 온다고 하니 오전에 빨리 다녀오면 된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는 결단력 있는 남편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지방 출장으로 집에 없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 물어봤다.


 "황사 비가 온다는데 오늘은 자전거 타지 말까요?"
 "황사는 오후에 온다고 하네요. 오전에 빨리 갔다 와요. 그래도 불안하면 KF94 마스크 쓰고 가요."


 남편이 '그래도 가라'라고 할 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오늘은 황사 비 때문에 안 되겠네요. 가지 마요"라고 했어도 나는 자전거를 끌고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 물어봤을까?

 거의 다 와서 흔들리는 나를 누군가 붙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흔들리는 그때 내 옆에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을 뿐, 나의 선택과 도전을 지지해줄 만한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나 자꾸 흔들려요. 나 좀 붙잡아 줘요.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고 나 좀 응원해줘요."


 혼자서 잘 해낼 것 같은 나에게도 응원과 지지의 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세상에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진짜 이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다.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나는 잠시 무리에서 빠져나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때와 장소에서 나는 에너지를 채운다. 신체적, 정서적 에너지가 충분히 채워지면 비로소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따로' 또 '같이' 한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은 '따로' 할 때와 '같이' 할 때를 알고, 그때를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따로' 그리고 '같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과녁이 분명해야 지금이 '같이' 할 때인지, '따로' 있어야 할 때인지를 구분하고 행동할 수 있다. 기꺼이 다가가 함께 하거나, 잠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타인과 나의 거리를 줄였다, 늘렸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관계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을 때 나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나와 다른 색깔을 지닌 사람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말은 쉽다.


 나의 경우 '거리 조절 능력'을 배우는데 40년이 넘게 걸렸다. 나를 도와주는 참 어른이 옆에 있었다면 그 시간을 좀 단축할 수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지도'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어느 쯤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스스로 부딪히며 배우는 수밖에 없다. '아 뜨거워.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 스스로 느끼고 거리를 두었다가도 '너무 떨어졌나? 춥고 외롭네' 스스로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에게 맞는 '최적의 온도'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충분한 시간이다.  


 '작심사일만 하기'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과 '최적의 온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편의 응원을 받고 나간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나는 나처럼 혼자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과 무리를 이루어 줄줄이 사탕처럼 한 줄로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그분들의 이름, 나이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탄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반갑고 친근하다. '따로' 자전거를 타지만 '같이' 황사 비를 맞으며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린다는 점에서 우리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따로' '같이'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 덕분에 '작심사일만 하기, 마지막 날' 챌린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정오를 넘어서 굵어지기 시작한 빗발 때문에 목표로 삼은 '고양 대덕 생태공원'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평화의 공원과 월드컵 공원을 넘어 노을 공원까지 갈 수 있었다. 그날 나와 함께 황사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 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작심사일만 하기' 챌린지를 마치면서

 나의 두 번째 챌린지 '작심사일만 하기'가 끝났다. '작심사일'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쉬면서 생각해 봤다.

 이번 챌린지는 '나의' 의지를 따라, '나에 의해서' 계획되고 실행된, '' 위한 챌린지였다.  인생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보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성공은  다른 성공을 낳고, 도전은  다른 도전으로 이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때에,  방법대로 시도해서 성공한 경험은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며,  다른 성공을 낳게  것이다. 자전거가 가져온  다른 도전은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자전거를 배우고 달라진 나의 삶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올초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가 탈락의 쓴맛(?)   봐서 이번에는 준비를 열심히 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매일 조금씩  내려간 구슬 같은  글들을 엮어서 8 마지막  작가 신청을 했다. 9 2,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야호, 나도 드디어 브런치 작가가 됐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첫 글을 발행하기 전에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계신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찾아 읽어봤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에 그저 '와'라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까지 발행한 작품과 브런치에 올린 글, 그리고 그분들이 보유하고 있는 구독자수가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다. 이런 곳에서 내가 글을 써서 발행한다고? 민망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 갖고 덤볐다가 보기 좋게 창피나 당하고 속까지 빨개져서 나가떨어지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를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편을  좋아한다."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하는 게 삶이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란 없다. 아무리 잘해도 후회가 되고, 미련이 남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후회하는 편보다는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더 낫다.

 그래서 나는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글을 쓰기로 했다. "죽음이 목전에 와도 글을 쓰겠다"는 이어령 선생님처럼 나도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했다. 왜 쓰려고 하는가, 의미는 글을 쓰면서 찾기로 했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지?'라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브런치에 매주  편의  발행'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  , 스스로 정한 마감기한을 지키기 위해 글쓰기 훈련이   자신을 다독이며 2달째  쓰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인생이 너무 우울하고 지루하고 무의미해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내 나이 겨우 마흔에 말이다.

 지금 나는 20대의 나보다 더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전거 타고 가봐야 할 곳이 많다. 글을 계속 쓰려면 읽고 생각하고 책에서 배운 대로 살아 봐야 한다. 자전거와 글쓰기에 이어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인생 과목'이 생겼다. 삶이 지루할 틈이 없다.

 '작심사일만 하기' 챌린지의 성공이 내 삶에 가져온 변화가 결코 작지 않구나, 깨닫는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처음 발표했고, 우리에게는 '나비효과'로 잘 알려진 이론이다.


 '작심사일의 도전'이 내 삶에 일으킨 변화가 어디까지 퍼져 나갈까, 예측할 수 없어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가슴이 떨린다.


 아무것도 안 하고 후회하는 삶 보다 날갯짓이라도 한 번 해보고 후회하는 삶이 더 좋지 않을까?

 나의 날갯짓이 가져올 토네이도 급 변화를 기대하며 올해가 가기 전에 구겨져 있는 나의 날개를 펴보자.

 어색하고 미숙한 날갯짓이라도 계속 시도해보자.

 그러면 내년에는 큰 목표를 향해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작심사일만 하기' 챌린지는 끝났지만, 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작심사일만 하기' 챌린지로 시동을 걸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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