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마루 Nov 24. 2021

글이 쓰기 싫을 때

글을 써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를 찾아서

  나는 100일이 안 된 병아리(?) 브런치 작가다.

 "뭐? 네가 작가라고?"

 "응? 아니, 그냥 나는 글을 좀 쓰는 사람이라고."

(글을 좀 쓰는 사람과 작가가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싶어서 한 번의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됐다. '작가'라는 족쇄를 내 목에 달아야 가벼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아무 글이나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게 나의 꿈이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창작 열정과 브런치 팀의 응원에 힘입어 나도 매주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있다. 발행한 글은 10개가 넘었고, 개월 수로는 3개월이 되어 간다. 미친척하고 일 년 동안 글을 쓰자! 고 결심했건만, 벌써 마음이 흔들린다.

 

 "내가 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지? 왜 겁도 없이 글쓰기에 도전장을 내밀었지?"


 나에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보라'고 자주 권했던 남편을 한 번 째려본다. 남편이 그렇게 권유해도 안 들으면 그만이다. 그 말대로 도전하기를 선택한 사람은 나다. 결국 처음의 질문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가 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쓰기 싫으면 안 써도 된다. 나는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쓰고 싶을 때 쓰면 된다. 내 글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독자도 없다. 그야말로 나는 글 쓰는 일에서 자유롭다. 그런데 내 마음은 자유롭지 않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 내 머리에서 '글을 써야 하는데, 이번 주에는 뭘 쓰지?'라는 고민이 떠나지 않고 있다. 스스로 정한 마감기한을 지키지 못한 날에는 불안이 극도에 달해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글쓰기 생각, 산책하면서도 글쓰기 생각, 이를 닦으면서도 글쓰기 생각, 청소를 하면서도 글쓰기 생각뿐이다.


 ''브런치 작가'라는 족쇄를 씌워서라도 글을 쓰고 싶다'는 '내 마음' 대로 되었다. 자업자득이다. 내가 씌웠으니 내가 벗어버리면 된다. 간단하다.


 지난주 목요일 오전, 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아이패드를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버렸다.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를 발견할 때까지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야호, 신난다. 글쓰기에서 자유다!'

 

 그동안 나는 글을 계속 쓰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기 싫은 날에도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나의 글쓰기 주제가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글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탔다. 나의 글쓰기 벗, 아이패드 대신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다른 사람이 온라인 세상에 올린 창작물을 열심히 소비했다. 몇 백자 안 되는 글 쓴다고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말끔하게 해치웠다. 책장에 쌓인 먼지를 닦고, 오랫동안 통세척을 안 해서 물때가 잔뜩 낀 세탁기 안을 청소했다. 체증이 가신 듯이 속이 후련하다.

 

 글쓰기와 담을 쌓은 지 이틀이 지났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다시 "글을 써야지. 그게 내 일이지."라고 혼자 말을 한다. 내가 한 말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 말한다. "글쓰기가 너의 일이라고 누가 그래?" '글쓰기는 필연이다'라고 나에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글쓰기를 필연을 넘어 소명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 나이 서른 중반을 넘어 마흔을 향해 달리고 있을 때이다. 그 시절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젊어서 만난 당뇨, 남편의 일시적인 실직, 힘겨운 육아,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나와 무관한 일을 오래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삶이 위태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세상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일까?"


 나는 질문을 갖고 도서관에 갔다. 나는 '해답'을 찾아 서가를 돌아다녔다. '이름'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저자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잘못만도, 세상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집단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혹독하게 대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버텨준 자신을 사랑해주세요. 앞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조금 더 돌보세요.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있어요."

 "바꿀 수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과 사람들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거리를 두세요."

 "거절할 때는 간단명료하게 하세요. 거절해도 괜찮아요. 거절할수록 당신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당신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어요. 남과 비교하지 말고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자들의 것이랍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꿈꾸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힘내요.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당신을 응원합니다."


 오래된 서가 구석에 꽂혀 있는 책들이 나에게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소망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지금도 당뇨와 당뇨 합병증의 위험 가운데 있다. 남편은 다시 회사에 들어갔지만,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 마냥 사랑스럽고 순종적이었던 아이들이 자기 생각과 기준을 갖고 부모의 말과 행동을 지적하고 따지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세상을 살려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내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이 세상의 작가들이 나에게 건넨 위로와 희망과 지혜가 어두운 내 삶에 빛이 되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싶다. 그 누군가가 단 한 명이어도 괜찮다.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 다시 찾았다. 나는 '절박한 이유'에 붙들려 다시 의자에 앉는다. 무엇을 쓸지는 글을 쓰면서 찾기로 한다. '나는 왜 글을 쓸까?'라는 물음표가 나에게 또 다가와도 나는 아이패드를 열고 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찾아 자판을 계속 두드린다. 글쓰기가 준 고통에는 글쓰기가 약이다.


*이미지 출처

Andrea Piacquadi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작가의 이전글 남들처럼 달리지 못해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