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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Nov 23. 2021

남들처럼 달리지 못해도 괜찮아

나만의 중거리 기준을 찾아서, 세 번째 챌린지

 다이어트를 하든, 글쓰기를 하든, 운동을 하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다.

 목표는 분명해야 하지만 너무 높아서도 안된다. 현실 가능하되, 현재 나의 수준에서 조금 벅찬 정도의 목표이어야 한다.

 자전거를 이제 막 배운 사람이 '국토종주'라는 목표를 내세우면 얼마 못 타서 포기하기 쉽다. '국토종주'라는 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밟아야 할 단계가 여러 가지 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맨 끝에 '국토종주'를 놓고 맨 아래에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을 놓아야 한다. 아래서부터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다 보면 초보 수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잡은 목표는 '자전거 타고 남산의 남측순환도로 오르기'였다. 저녁에 자전거 부대들이(1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팀을 이뤄 남산타워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마치 군부대의 행진 같아서 나와 남편이 그들을 부를 때 자주 쓰는 용어) 자전거를 타고 남산의 남측순환도로를 오르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나도 저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남산을 오르고 싶었다.

 평지에서도 자전거를 잘 못 타는 사람이 2km가량 이어진 경사도 6%의 오르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나 자신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서 남편이 계속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고 내 가슴에 바람을 넣어 주었다.

 바람만 갖고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목표와 관련된 일을 바로 즉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 토요일 오전에 따릉이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따릉이에 익숙해질 무렵 MTB(산악용 자전거)와 로드 바이크(도로에 최적합화된 자전거)의 장점을 합쳐 놓은, 입문용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구입했다.

 자전거가 생겼다고 바로 자전거를 자주 타게 되지 않는다. 일상에 '자전거'라는 새로운 활동을 집어넣는  먼저다. 나의 뇌가 눈치채지 못하게, 마치 처음부터 자전거는 나와  몸이었던 것처럼, 자전거와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역시 쉬운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베란다에서 자전거를 꺼내 집 밖까지 끌고 나가기'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다.

 이 일이 익숙해지면 단계를 조금씩 높여 나가면 된다. '자전거를 끌고 한강 자전거 도로까지 나가기' 한강 자전거 도로까지 나가면 자전거를 타기가 훨씬 쉬워진다.


 첫 번째, 두 번째 챌린지를 통해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까지 가는 길이 편해질 때쯤 내 안에서 새로운 욕구가 올라왔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욕구를 갖게 되다니, 놀라운 변화다. 올해 초만 해도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는 게 안돼서 벌벌 떨었던 내가 '자전거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보고 싶다'는 또 다른 목표를 갖게 되다니 말이다.

못할 것 같은 일도 시작해 놓으면 이루어진다
<채근담>

 나의 욕구를 좇아 가면 자전거 타고 하루에 100km 이상 달려 춘천까지 가고 싶다. 하지만 왕복 30km 주행이 최고 기록인 나에게 하루 100km는 무리다. 좋은 욕구든, 해로운 욕구든, 절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금방 고갈되고 만다.

 고갈된 에너지가 빨리 채워지면 좋겠지만, 한 살을 더 먹을수록 고갈 속도는 빨라지고 충전 속도는 느려지고 있다. 내가 오래된 핸드폰 배터리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야지. 느려도, 꾸준히 노력하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목적지는 방화대교 남단과 한강시민공원 삼패지구다. 왕복으로 하면 40km가 조금 넘는다. 두 곳 다 처음 가는 길이다. 이틀 다 공기 중 미세먼지가 한 자릿수여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달린 지 60분이 되어 갈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이 길이 맞나?"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혹시 목적지를 이미 지난 것은 아닐까?"

 "아, 이제 그만 쉬고 싶다."


 아는 길이었다면 쉬어야 할 때는 쉬고, 달려야 할 때는 달려서 자전거를 더 효율적으로 탈 수 있지 않았을까? 초행이라 내 앞에 뭐가 나올지 알 수가 없어 불안한 데다가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올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가서 쉬자'라고 하다가 쉴 때를 놓치고 말았다. 실제 자전거를 탄 거리는 편도 20km밖에 되지 않는데 느낌으로는 그 이상을 달린 것처럼 힘이 들었다.

 얼마 안 달리고 지쳐서 공원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그런 내 옆을 잘 차려입은 라이더들이 빠르고,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나에게는 라이딩의 끝인 지점이 저분들에게는 '목적지 중간에 있는 목'처럼 보였다.

 더 먼 목적지를 향해 여유롭게 라이딩을 즐기는 그분들에게서 '고수의 느낌'이 풍겼다. '나는 언제쯤 저분들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부럽고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이제 겨우 한 달 자전거를 탔다. 이제 겨우 왕복 라이딩 거리 40km를 넘었다.

 고수들이 갖고 있는 '여유'와 자신감'과 '확신'은 경험에서 나온다. 자주 타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다.


 아이들에게 일찍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 요리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된장국, 카레, 볶음밥처럼 아주 간단한 요리였다. 야채를 다듬고 썰어서 냄비나 팬에 담으면 끝이다. 나 혼자 한다면 30분 만에 끝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칼질을 시키니 요리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이들이 식칼을 손에 잡아 본 적이 없어서 칼질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요리 경험이 전무한 아이들과 집밥 경력 10년이 넘는 나를 비교하며 왜 나처럼 못하지? 속을 끓이는 것이 문제였다.


 비교하지 말자. 비교하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자. 어제보다 오늘, 한 뼘 더 성장한 나를 칭찬해 주자.

 과거의 나는 허리까지 오는 자전거 안장을 보면서 '안장이 너무 높은 것 아니야? 무서워. 난 못해' 하며 어린아이처럼 덜덜 떨었다. 현재의 나는 자전거 안장 위에 가볍게 올라탄다. 따릉이를 타고 편도 15km 도 못 갔던 내가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타고 편도 20km를 달려 한강공원 삼패지구와 방화대교 남단 체육공원에 왔다.


 나는 잘하고 있지 못하지만 자라는 중이다.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 자랄 것이다. 남들처럼 달리지 못해도 괜찮은 이유다.

 끝을 모르는 우주에는 서로 다른 빛을 뿜어내는 별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경쟁하지 않고 고유의 자기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들처럼 달리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정한 기준을 갖고 나에게 맞는 속도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면 된다. 경험이 쌓이면 나도 자전거 도로에서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빛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저 아줌마도 하는데 나는 더 잘할 수 있지'라고 용기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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