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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Nov 29. 2021

실수가 준 뜻밖의 선물

ME 자전거 학교에서 치르는 첫 번째 시험

"당신은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요?"


 'ME 자전거 학교'를 열고, 내가 나에게 내는 '첫 번째 시험 문제'이다. 시간과 거리 제한은 없다. 언제까지 답을 제출해야 한다는 기한도 없다. 정답도, 오답도 없다.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만큼 가면 된다. 이 시험의 목적은 '줄 세우기'에 있지 않다. 시험을 치르면서 실력과 체력이 늘었다면 '합격'이다. 이렇게 즐겁고 기대되는 시험은 처음이다.

   

 시험문제를 받고, 처음으로 구리시계를 넘어 남양주시에 있는 한강공원 삼패지구에 다녀왔다. 왕복 50km가 되지 않는 단거리다(내 기준으로 50km 미만은 단거리, 50km 이상-100Km 미만은 중거리, 100km 이상은 장거리다.)


 일주일 뒤, 한강공원 삼패지구를 넘어서 팔당유원지까지 다녀왔다. 왕복 60km가 되지 않지만 저번보다 10km가 늘었다. 이번에도 합격이다.


 6월 5일 토요일, 남편과 함께  왕복 70km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다산 생태공원'이다. 팔당유원지에서 5.6km(24분 소요 예상) 더 가면 된다. 이 날을 위해 남편도 자전거를 샀다.

 주말 이른 아침, 자고 있는 아들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나와 남편은 조용히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주말에는 자전거와 함께 지하철 탑승이 가능하다. 단, 지하철 맨 앞과 뒤칸만 가능하다.

 옥수에서 내려서 간단히 몸을 풀어준다. 아직 덜 깬 몸을 배려해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천천히 자전거를 탄다. 내가 앞서고, 남편이 나를 뒤따랐다. 남편이 나보다 빨라서, 선두에 서면 내가 못 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을 예열하면서 1시간 이상을 달리면 미음나루 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는 초반부터 경사가 세다. 자전거 도로 폭도 좁다.

 나는 포기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남편은 미음나루 고개가 나오기 전부터 나를 추월하더니 자전거를 타고 미음나루 고개를 올라갔다. '우와, 대단하다. 대단해.' 그저 감탄만 나왔다.

 업힐을 지나면 항상 다운힐이 나온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는 동안 180까지 올라갔던 심박수가 안정되고, 땀이 식는다.

 한강공원 삼패지구 - 덕소 강변공원 - 한강공원 팔당지구 - 팔당유원지. 여기까지는 복습이었다.

 '팔당유원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말 궁금했었다. 일주일 전, 팔당유원지까지 와서 되돌아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를 안고 횡단보도를 건넜더니 또 짧은 오르막이 나온다. 50m도 되지 않는 정말 짧은 오르막이지만, 나는 '헉헉' 거리며 힘들게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고 동쪽으로 가면 오르막이  많다. 유명한 고개로 동부 3고개, 7고개, 22고개가 있다. 오르막이 많아서 힘든 만큼 칼로리 소모가 많다.  업힐과 다운힐을 반복하면서 롤러코스터를  때의 짜릿함을 경험할  있다.)

온쪽은 팔당댐, 오른쪽에 보이는 터널은 봉안터널. 이 터널을 통과하면 팔당호가 나온다.

 언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내 입에서 '우와' 감탄이 튀어나왔다. 팔당유원지까지 와서 힘들다고 되돌아가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그제야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강 주변에 세워진 아파트들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그 자리에 나무가 빽빽하게 덮고 있는 산이 서 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산이 한강을 품고 있다. 조금 더 가면 수문을 굳게 닫은 팔당댐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로만 듣던, 팔당댐을 자전거 타고 와서 보게 되다니. 자전거 덕분에 내 눈이 호강한다. 팔당 풍경 맛집의 메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봉안터널을 통과하면 팔당호가 나온다. 팔당호는 고요하고 신비롭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허기진 마음이 채워지고, 복잡한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팔당 풍경 맛집이 공짜로 제공하는 풍경에 취해서 자전거를 타다가 '다산 생태공원'을 지나치고 말았다. 팔당유원지부터는 남편이 앞장섰는데, 초행이라서 인간 내비 남편도 길을 못 찾았다. 남편은 이렇게 된 이상 '물의 정원'까지 가자고 했다. 물의 정원에 가려면 직진하다가 갈림길에서 왼쪽, 북한강 자전거 길, 춘천 신매대교 방향으로 빠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남편이 길을 못 찾고 그대로 직진해서 건너지 말아야 할 북한강 철교를 건너고 말았다.

 계획이 틀어진 데다가 평소보다 오래 달려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의 실수로 여기까지 오고 말았잖아요."

 남편이 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처음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지. 왜 그렇게 화를 내요. 우리 좀 여유를 갖고 삽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었다. 실수 덕분에 내가 왕복 80km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실수 덕분에 사람들이 건너고 싶어 하는 다리, 북한강 철교를 그날 나도 건넜다.


 내가 나에게 낸 시험 덕분에 그날 나는 '여유가 1도 없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앞에 있는 목표를 좇다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여유가 없는 나, 처음이라서 얼마든지 범할 수 있는 나와 타인의 실수를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하는 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또 나를 알아간다.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나의 마음을 보면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고 또 자책한다. 자책은 그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지금부터 여유를 가져보려고 노력하면 된다. 부족한 나의 모습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거면 충분하다.

왼쪽은 북한강 철교 옆에 있는 경의중앙선 철길, 오른쪽은 북한강 철길

 멀리 온만큼 돌아갈 길도 멀다. 그러나 돌아갈 길에 대한 염려는 잠시 내려놓고, 남편이 사다준 시원한 라떼와 간식을 먹으면서 하늘, 다리, 강, 산, 사람들을 바라본다. 바로 여유를 실천해 본다. '화'는 사라지고, '행복'이 마음에 깃든다. 실수를 용인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니 행복이 찾아든다.  


 돌아갈 길을 염려했지만,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업힐과 다운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닌다. 올 때 업힐은 돌아갈 때 다운힐. 속도감에 취해 앞만 보고 페달을 밟다가 다시 풍경을 놓치고 있었다. 이 놈의 정신머리. 방금 전까지 '여유를 갖자'라고 해 놓고 또 여유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또 잘못하고 있었다. 실수를 깨달은 나는 속도를 살짝 줄이고 다시 하늘을 보고 강을 보고 나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본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실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신중하고 조심하고 최선을 다해서 실수의 범위와 강도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귀여운(?) 실수도 있다. '아이고, 이런, 세상에나' 하고 잠깐 놀라고 마는 실수, 얼마든지 만회 가능한 실수. 이런 실수는 팍팍한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다.

 "나도 이런 실수를 다 하네." "나도 사람이네."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완벽해질 수 없는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여유,

 "나만 실수하는 줄 알았는데 저 사람도 실수를 하네." "실수하는 너, 나랑 같은 인간이구나." "반갑다, 친구야. 우리 잘 지내보자."

 완전해 보이는 타인에게서 나와 같은 점을 발견하고 친근하게 다가가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의도성이 없는, 뜻밖의 실수를 함께 해결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할 수 있는 여유.

 

 이제는 내 삶에 실수를 허용하자.

 "실수하면 안 되는데" 하며 종종거리는 나를 놔주자.

 "실수해도 괜찮아. 이번에 못했으면 다음에 조금 더 잘하면 되지"라고 실수할 때마다 나에게 말해주자.

 실수를 허락하고 용납하는 여유, 단번에 안된다.

 여유도 습관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나는 또 이렇게 삶의 지혜를 하나 더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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