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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Dec 07. 2021

길을 잃었을 때, 3가지를 기억하자

한강 자전거길 넘어 아라 자전거길로

 

 4,5월 사이클링 기록을 확인해 보니 누적거리가 587km이었다.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총 6주를 탔으니까 일주일에 적어도 100km는 자전거를 탔다고 할 수 있다.

 4월 말,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사서 연습할 때만 해도 중심을 못 잡아서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했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자전거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이제는 자전거를 타는 게 편하다.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타는 게 처음처럼 신나고 재밌지 않다. 늘 가던 곳만 가서 그런가, 좀 지루하다. 변화를 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볼까?" 혼자 고민하며 장소를 몰색하고 있을 때 남편이 "이런 것도 있네요." 하며 '국토종주 자전거길 노선도'와 '수첩'을 보여 주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노선도'는 전국에 있는 자전거길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종주 인증 수첩'을 사서 각 코스의 인증센터에 비치된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인증센터에서 확인 후 인증 스티커와 인증서, 인증메달, 인증서 케이스를 받을 수 있다(스티커, 인증서, 메달, 케이스 비용은 개인이 부담).

 한 달 전 내 목표는 '자전거 타고 남산 남측순환도로 오르기'였다. 그때 나의 실력으로는 '그 정도의 꿈' 밖에 꿀 수 없었다. 그런데 '국토종주'를 하겠다고? 아직 남산의 남측순환도로도 안 올라가 본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무시하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나의 뇌는 당연히 '안돼. 너무 힘들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뇌는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녀석과는 길게 대화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질게 볼 보듯 뻔하니까.

 그러나 나는 지고 싶지 않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한계를 살짝이라도 뛰어넘어 보고 싶다. 그래서 '난 못해'라는 말을 달고 사는 나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용기를 주고 싶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일단 뭐라도 해보세요'라고 힘을 주고 싶다.


 '국토종주'에 목표를 맞추고, 내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다. 먼저는 지도와 수첩을 구입하기. 지도와 수첩은 인터넷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인천광역시에 있는 서해갑문 인증센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지도와 수첩을 사기로 했다. 집에서 서해갑문 인증센터까지는 왕복으로 90km 정도 된다. 중거리 주행 연습도 하고, 가는 길에 있는 무인인증센터에서(서해갑문, 아라 한강갑문 2곳) 도장도 찍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방화대교 남단의 아침 풍경

 '국토종주' 목표를 향해 첫 발걸음을 시작하는 날,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아이들 등교를 맡기고 나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새벽 4:50 집에서 출발해서 6:30 방화대교 남단에 도착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어스름하게 푸른빛이 감돌았던 하늘이 태양의 등장으로 환하게 밝았다. 한강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다니, 자전거를 배우기 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자전거를 배워 정말 다행이다.


 방화대교에서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까지는 대략 24km이다. 카카오 맵이 알려주는 예상 소요 시간은 1시간 15분. 시속 20km 이상으로 달리면 7:30에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할 수 있겠지, 기대하고 다시 출발!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8시 10분이었다. 중간에 길을 잃고 잠시 헤매는 바람에 예상보다 40분이 더 걸렸다. 방화대교 남단에서 경인 아라뱃길로 가려면 김포터미널 물류단지를 통과해야 한다. 물류단지 안에 자전거길 표시가 있지만, 길이 여러 개라서 헷갈렸다.  

 결국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카카오 맵을 열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확인해 봤다. '경인 아라뱃길'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지도와 주변을 번갈아 보며 길을 찾고 있을 때 저 쪽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는 게 보였다. 큰 건물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와 같이 자전거를 탄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저분들이 오는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 싶어서 얼른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고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미로 같은 물류단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김포터니널 물류단지를 빠져 나오면 뻥 뚫린 고속도로 같은 아라자전저길이 나온다.
아라자전거길과 그 옆에 있는 아라뱃길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의 시작과 끝 지점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서 지도와 수첩을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갈림길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짧은 순간 왼쪽으로 난 짧은 업힐을 올라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직진하고 말았다. 몇 미터를 갔을까?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아까 왼쪽으로 난 업힐을 올라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내 뒤통수를 붙잡았다. 나는 멈추고 다시 카카오 맵을 열어서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해봤다. 내 느낌이 맞았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는 게 바른 길이었다.


 이제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다시 물류단지 앞에서 멈췄다. 올 때와 갈 때 풍경이 왜 이렇게 다른지, 전혀 다른 길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전거를 타고 경인 아라뱃길-방화대교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뒤를 따라 김포터미널 물류단지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경인 아라뱃길 판개목쉼터를 지나 드디어 한강 자전거길에 진입했다. 집까지, 24km 남았는데도 집에 다 온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여기서부터 집까지 길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냥 달리면 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떠나기 전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과 카카오 맵을 보면서 머리로 길을 익혀도 실제로 와서 보면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고, 어느 길이 맞는지 헷갈린다. 그러나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 '길을 잃었을 때 3가지를 기억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가 선명하게 찍힌 지도

이미 이 길을 여러 번 오간 사람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직감과 직관)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정확한 지도는 기본이다. 지도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경로에서 이탈했다면 얼마나 이탈했는지, 어디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도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고 마음이 불안할 때가 있다. 그때는 경험자의 도움을 받아보자. 그러면 나 혼자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것보다 더 빨리, 더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지가 다르고, 길이 여러 개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턱대고 내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내가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다. 그때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믿고 가자.

 나를 믿고 가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실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마흔 고개를 살짝 넘은 나, 익숙한 환경과 인간관계에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이 많다. 확신을 갖고 덤비다가도 문득문득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라는 의심이 든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목표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그려진 나만의 꿈의 지도를 펼쳐 본다. 지도를 보면서 내가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으면 책과 유튜브를 통해 앞서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조언을 듣는다. 내가 그린 나의 꿈의 지도와 내가 만난 멘토들의 조언 그리고 많은 고민과 실패를 통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는 나의 직감과 직관.  

 

 살다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3가지를 기억하자.

 내가 그린 나의 꿈의 지도

내가 가고 싶은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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