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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Dec 15. 2021

'빈 둥지 증후군' 예방법

 6월이다. 햇볕이 제법 뜨겁다. 초여름 뜨거운 해 아래서 자전거를 타면 햇볕에 노출된 살이 새까맣게 타버린다. 이럴 때는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 둘 중에 편한 시간을 골라 자전거를 타면 된다.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고 늦게 떨어진다. 또 우리나라는 거리등 설치가 잘 되어 있어서 새벽에도, 초저녁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

6월 새벽 5시 30분, 한강 자전거도로 풍경

 개인적으로는 이른 아침에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선선하기로는 늦은 오후가 좋지만, 그 시각 한강 자전거도로에는 사람이 많다. 퇴근길 서울 시내 도로 같다. 나는 뜨거운 해도 싫지만, 번잡하고 소란한 도시는 더 싫어한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일상과 잠시 이별하고 내 몸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시간대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으면 그들이 내는 소음에(뽕짝 노랫소리, 팝송, 지나갈 테니 옆으로 비켜 달라는 '따릉 따릉' 소리까지 정신이 없다.) 마음을 뺏겨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활기찬(?) 저녁 대신 조용한 아침을 택했다.


 더위와 번잡함을 피해 자전거를 타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새벽 4시 30분이 되면 몸이 알아서 깬다. 혼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4시 50분 집에서 나온다. 일출 시간이 5시 15분이라 아직 어둡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밝다.

 자전거를 타다가 7시쯤에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 그때 남편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깨운다. 그러면 아이들이 알아서 밥을 먹고 자기 방에 들어가 온라인 수업을 듣거나 학교에 간다. 내가 없어도 우리 집 일상은 이렇게 잘 흘러간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성장한 자녀들이 부모의 곁을 떠나고 나서 중년의 주부들이 느끼는 허전한 심리를 가리키는 단어다. 정신분석학자 융은 사람들이 40세를 전후로 이전에 가치를 두었던 삶의 목표와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중년기 위기(Midlife Crisis)가 시작된다고 했다(Daum 백과사전).

 내가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서른 넘어 두 아이를 낳고 나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빈 둥지 증후군'이 남의 일 같았다. 엄마가 밖에 나가려고 하는 시늉만 내도 '엄마, 가지 마' 하고 매달리는 아이들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 자기만의 둥지로 날아갈 거라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고등학생이 된 첫째 녀석은 '나 혼자 산다'를  즐겨 보면서 자기 혼자 살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내년에 중3이 되는 둘째는 "오늘 네가 청소할 차례인 거 알지? 언제 청소할 거야?", "영어하고 밖에 나가는 거야?", "지금 나가면 몇 시에 들어오니?"라고 엄마가 물으면 뜬금없이 "누구세요? 저 아세요?"라고 묻는다. 아니면 "엄마, 언제 나가세요? 아빠랑 운동 안 가세요?" 하고 엄마와 아빠의 외출을 종용한다.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엄마는 관심을 꺼달라는 뜻이다.


 아이들의 성장이 반가우면서도 서운하다. 연극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배우가 느끼는 공허함, 쓸쓸함과 같다고나 할까? 나와 '빈 둥지 증후군'은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자기만의 둥지를 찾아 떠나가는 날 눈물이 왈칵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고독은 각자의 몫

누구나 어느 순간엔 혼자가 된다.
옆에 누군가가 있건 없건
잠자리에 눕는 순간, 길을 걷는 순간, 밥을 먹는 순간
우리는 언제나 혼자인 순간과 마주하고, 고독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이 마음의 싱크홀은 동호회 열다섯 개에 가입해도,
애인 일곱 명을 동시에 만나도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혼자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계로는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 고독...
우리가 할 일은 관계를 통해 기쁨을 찾으면서도,
혼자의 영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며
혼자를 채우는 법을 알아가야 한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다산북스

 

 이 세상에 영원한 관계란 없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관계 또한 계속 변한다. 나와 아이들의 관계 역시 그렇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것만이 '빈 둥지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변화를 강요당하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변화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꼭 해 보고 싶었던 일, 그게 무엇이든, 그 일을 당장 시작해 보자. 그러면 변화는 일어난다. 내가 먼저 나서서 변화하려고 하면 변화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느꼈던 기쁨을 내가 자라는 모습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 도전과 변화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 때마다 나의 자존감도 올라간다.

오전 9시, 두물머리에서, 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중

 나는 자전거 하나 배웠을 뿐인데 자전거를 배우기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자전거를 정복하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자전거를 주제로 책을 쓰고 싶은 꿈이 생겼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집 한편에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었다. 폭이 좁은 원목 책상 한 개와 원목 의자 2개가 전부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이 작은 공간은 산뜻하고 환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만의 빈 둥지'가 있다. 내 마음의 빈 둥지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보자. 그러면 중년기 위기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는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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