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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Sep 12. 2021

어쩌다가 자전거

나의 자전거 입문기

어쩌다가 당뇨

 아직 한창인 내 나이 서른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건 바로 당뇨. 어쩌다가 내가 당뇨에 걸렸지? 나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4가지였다.

잘못된 식습관

운동부족

스트레스

유전

 이 4가지는 모든 병의 원인 아닌가? 질문은 어려운데 대답은 참 쉽다. 이런 대답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인 찾기 분석은 이제 그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누가 그랬어?"라고 소리 질러 봐야 소용없다. 엎질러진 물이라도 주워 담을 수 있으면 담든지, 아니면 새 물을 받든 지, 해결책을 찾아 움직이는 게 가장 빠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로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당뇨가 무서운 이유는 당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합병증 때문이다.

실명 위험 20배 높이는 당뇨병성 망막병증

발이나 발가락을 절단할 수 있는 당뇨병성 족부병증

콩팥을 망가뜨리는 당뇨병성 신부전증

당뇨병성 심혈관질환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다고 "괜찮아" 하며 내 몸을 내버려 둔다면 어느 날 갑자기 실명하고, 발 잘리고, 병실 침대에 누워 혈액 투석을 하게 된다.

 나의 미래를 상상하면 명치 아래가 쪼이는 느낌이 들고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 같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시간이 조금 더 많은 내가 당뇨 합병증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해서야 되겠는가.

 '어쩌다 당뇨'는 내 몸이 보내는 경고장 일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나 좀 돌봐줘"라는 몸의 호소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 몸에 대해서 공부하며 나에게 맞는 생활패턴을 찾아가자.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데 5년이 걸렸다.


 나의 운동 이력

생각 정리, 마음 정리가 끝났으면 이제는 행동이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가까운 남산을 그냥 걸었다. 매일 같은 장소를 걸으니 지루했다. 그래서 남편을 따라 달려봤다. 같은 거리를 두고 계산할 때 걸으면 1시간이 걸리는 것을, 달리면 30-40분 밖에 걸리지 않으니 성질 급한 나에게 괜찮은 운동 같았다. 그런데 달리기도 매일 하니 지루했다. 또 쉬는 날 없이 달리니 무릎이 아팠다.  


 걷기, 달리기 말고 다른 운동을 찾다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수영장이 있어서 수영을 시작했다. 어릴 때 수영장에서 놀다가 호기심이 발동해서 수심이 깊은 쪽으로 가본 적이 있었다. 그때 발바닥이 발에 닿지 않아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주위에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물이 무서워서 물이 있는 곳에는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매일 걷고 달리느라 고생이 많은 내 두 다리에 잠깐의 휴식 시간을 주기 위해 수영에 도전한 것이다.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겠지만, 수영 강사에게 '수영 정말 못한다'라고 하도 욕(?)을 먹어서 죽을 뻔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까짓 자존심, 좀 죽으면 어때."

"자존심을 죽이면 나도 물개처럼 물속에서 놀 수 있다!"

"아자! 아자! 아자!"


 물개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니 나같이 몸이 뻣뻣한 사람도 접배평자(접형,배형,평형,자유형)를 얼추 하게 되었다.

 

 수영을 배운 지 1년, 2년, 5년이 되어갈 때쯤 또다시 지루함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이 놈을 어떻게 멀리 보내 버리지?'라고 궁리를 짜내고 있을 때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무지개도 일곱 색깔. 일주일도 월화수목금토일, 7일. 일주일을 7가지 운동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우와, 재밌겠다!"


 주중에는 걷기, 달리기, 수영을 하고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을 시작으로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아차산, 용마산, 족두리봉, 불암산, 도봉산, 북한산에 이어 기차와 고속버스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소백산, 한라산 백록담, 설악산 대청봉까지 섭렵했다. 그 이후로 우리 네 식구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서 가볼 만한 산부터 찾는다. 경주에 갔을 때는 석굴암 옆에 있는 토함산을, 부산에서는 황령산과 금련산을 올라 광안대교와 광안리를 내려다보며 땀을 식혔다.

 

 산에 못 가는 주말에는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겁이 나서 풀코스는 못 뛰고, 하프마라톤만 3번 뛰었다.


 평지에서 달리는 게 지루해서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산악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감히 100km, 50km는 못 뛰고, 가장 쉬운 10km를 뛰었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고, 이제는 진짜로 풀코스 마라톤과 50km 산악 마라톤에 도전해 보려던 찰나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마라톤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고 수영장도 문을 닫았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하나?


 어쩌다가 자전거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영도 못하고, 마라톤도 못하고, 옛날처럼 남편과 함께 남산의 남측순환도로를 걸어서 올라가고 있는데 내 옆으로 자전거들이 떼 지어 쌩쌩 지나갔다. 20, 30 명이 족히 넘는 라이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남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군부대의 행진 같고, 반딧불이들의 춤 같았다.

 

"아휴, 부러워라. 나도 저 사람들처럼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느낌은 어떨까?"

"나도 자전거 부대에 끼고 싶다"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남산에 올라갈 수 있을까요?"

 

 남편이 말했다.


 "당연하지. 당신도 할 수 있지."


 마음에 품은 소망을 말로 내뱉으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고 싶다"

"할 수 있다"


 이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나의 머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까?"


 그야말로 "어쩌다가 자전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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