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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Sep 19. 2021

자전거와 나의 끈덕진 인연

우연이 필연으로

 첫 만남, 상처만 남기고 끝나다

 자전거와 나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라서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 까물까물하다. 그럼에도 그 시절 내가 탔던 자전거는 희미하게나마 생각난다. 그 자전거는 옆집에 살고 있던 고모네 자전거였고, 성인용이었다.

 집 근처에 있던 넓은 공터와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보려고 시도하던 어린 내 모습. 이 그림들을 조합해 볼 때 나 혼자 간 것 같지는 않다. 고종사촌(고모의 아들) 오빠를 따라 공터로 가서 자전거를 배웠던 것 같다.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가려고 시도하다가 자전거와 함께 쓰러져 무릎이 까졌던 기억이 난다. 무릎에 맺힌 선홍색 핏방울이 주는 공포와 쓰라린 아픔이 너무 선명해서,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해진다.


 두 번째 만남, 어라? 이제 좀 타네

 자전거와 나의 첫 만남은 상처만 남기고 끝났다. 자전거를 다시 타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크고 동글동글한 바퀴만 봐도 무서웠다. 내가 안장에 앉는 순간 두 바퀴가 "너무 무거워! 내려와!" 하고 나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새 두 사내 녀석을 키우고 있는 초년 주부가 되었다. 사는 게 바빠서 자전거를 다시 탈 기회가 안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 살 조금 넘어 지인들을 따라 간 소풍에서 나는 다시 자전거를 대면하게 되었다.

 마포구에 있는 평화의 공원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일행 모두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한강공원으로 나갔다. 나와 자전거만 평화의 공원에 남았다.

 나와 자전거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1시간(자전거 대여 기본 시간이 1시간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쳐다보며 말했다.


"상처로 남은 과거는 잊고, 오늘 너를 정복하고 말겠다."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자전거와 사투를 벌였다. 한쪽 발을 땅에 딛고 나머지 한쪽 발은 페달 위에 올려놓고 한쪽 발로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다가 땅에 디딘 발을 재빨리 페달 위에 올리고 두 발로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기를 짧게, 짧게 반복하며 공원을 돌았다. 넘어질 것 같으면 한쪽 발을 얼른 땅에 디뎠다.


 "휴, 안 넘어졌다."


 1시간 가까이 자전거와 사투를 벌인 끝에 나도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단, 주변에 사람이 없어야 하고 길은 평지어야 하고 자전거가 지그재그를 그리며 앞으로 나가서 보는 사람이 불안할 수 있었다.

 한두 시간만 더 연습하면 나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행들이 한강공원에서 속속 돌아오고 있고, 나도 자전거와 사투를 벌이느라 지쳐서 오늘은 여기서 만족.

 

 세 번째 만남, 트라우마로 남다

 한두 시간만 연습하면 나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한두 시간을 만들지 못해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첫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어느덧 초년 주부의 티를 벗고 어엿한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었을까. 내 아이들은 자전거를 잘 타기를 바라서 어린이용 자전거를 사서 시간 날 때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보조바퀴를 달고 연습을 했다. 곧 잘 타서 보조바퀴를 떼고 연습을 시켰다. 나는 한 시간 연습으로 부족해서 지그재그를 그리며 자전거를 탔는데, 아이들은 한 시간 연습으로도 충분했다.

 자전거 타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큰 아이를 데리고 한강으로 나갔다. 아이와 놀아준다는 것은 핑계고, 자전거에 대한 나의 오랜 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어린이용과 성인용, 이렇게 두 대의 자전거를 빌리고 헬멧도 안 쓰고 겁 없이 한강으로 나갔다. 옥수에서 출발, 서울숲에 도착해서 잠깐 쉬고 다시 옥수로 돌아오는 게 오늘의 목표다.

 옥수에서 용비교 전까지는 좋았다. 길도 넓고, 오르막도 없고, 자전거도 쭉쭉 잘 나갔다.


 "신난다! 신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용비교에 와서 날아가버렸다. 용비교는 중랑천 시작점에 놓인 다리로, 아치형이다.  지금은 이 정도의 오르막은 물이 목으로 넘어가듯이 가볍게 넘어가지만, 그 당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른 적이 없었다.

 용비교 앞에 와서 자전거 속도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하고 자전거도로에서 나와야 하는데 나는 기어코 오르막을 넘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었다. 자전거는 옆으로 쓰러질 듯 말 듯 지그재그를 크게 그리다며 도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중앙선까지 넘어설 판이었다. 반대편에서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오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옆으로 피하며 한 마디 내질렀다.  


 "아줌마, 미쳤어! 죽고 싶어!"


 아저씨는 자전거와 함께 빠르게 사라져 갔다. 하지만 아저씨 입에서 나온 욕은 내 마음에 찰떡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아저씨 욕 한 번 찰지게 잘하시네. 그나저나 내가 정말 미쳤나 봐. 어쩌자고 겁도 없이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왔을까?"


 앞서 가던 큰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엄마? 괜찮아요?"


 나는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뇌와 몸이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뇌는 계획한 대로 서울숲에 가자 했고, 몸은 뇌가 하라는 대로 하자고 했다. 이래서 목표가 중요하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라고 하는가 보다. 그날 나는 결국 목표를 달성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후유증이 있었다. 넘어질까봐 자전거 핸들을 얼마나 세게 붙잡았는지 다음 날 어깨, 팔이 아팠다. 또 이 날 먹은 욕 때문에 나는 다시 한강 자전거도로로 나가 자전거를 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자전거지, 결국 트라우마를 넘어서다

 다시는 자전거를 못 탈 줄 알았다. 그런데 절실함이 나를 다시 자전거 안장 위에 앉혔다. 당뇨인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운동 중에서도 가장 좋은 운동이 자전거다(실제로 해보니 그렇다. 사고만 조심한다면). 이 말은즉슨 나는 자전거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나는 다시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둘째 녀석에게 자전거 레슨비를 조금 쥐어주고, 집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를 배웠다. 내 자전거가 없어서 공원 옆에 있는 따릉이를 대여해서 연습했다.

 레슨이 없는 날에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몇 바퀴씩 돌았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니까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실력과 함께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날도 따릉이를 빌려서 공원으로 가는 데 공원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공원 내에서 자전거 탑승 금지"


"세상에 이런 일이! 누가 민원을 냈나? 자전거와 나는 이제 어디로 가지?"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욕을 먹고도 포기하지 않은 나다! 이 정도의 위기로 자전거를 포기할 내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공원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너무 좁았다. 이제는 한강으로 나갈 때다.

 마음은 이렇게 먹었어도 몸이 굳어서 한강으로 못 나가고 있었다. 그때 추진력이 뛰어난 남편이 나를 한강으로 이끌어줬다. 한산한 토요일 아침에, 남편과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나들목, 옥수로 갔다. 옥수에서 따릉이를 대여해서 2시간 내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렸다.

 내편인 남편이 내 뒤에서 나를 엄호해 주고 있어서 그런가, 무섭지 않았다. 1주, 2주, 3주 차가 되어갈 때는 내가 페달을 빨리 밟아서 하이브리드 자전거들을 제치기 시작했다. 속도가 빨라서 이러다가 사고가 날까봐 살짝 겁이 날 정도였다.

 트라우마 완전 극복!

 절실함이 실행을 낳았고, 실행이 트라우마를 넘어서도록 도왔다.

 

 이 정도면 자전거와 나의 인연도 참 끈덕지다. 자전거와 내가 다시 만나서 동고동락을 함께 할 평생 친구가 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징글징글하게 오래 걸렸다. 그래서일까? 자전거와 빨리 친해지고 싶다. 자전거가 내 몸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체력의 한계를 조금씩 올려서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보고 싶다. 앞으로 자전거와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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