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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마루 Sep 27. 2021

축 따릉이 졸업, 자전거 학교 입학

내 자전거가 생기다

 따릉이를 졸업하다


 내가 따릉이를 타고 앞에 가는 라이더들을 한 명씩 제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말했다.


 "당신도 이제 따릉이를 졸업할 때가 되었군요."

 

 "벌써?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나는 아직 바퀴 달린 것들이 무서웠다. 둘째 녀석의 로드용 자전거를 한 번 타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아주 살짝 밟았는데 바퀴가 큰 원을 그리며 앞으로 쓰으윽 하고 빠르고 부드럽게 굴러갔다.


 "아이코, 깜짝이야."


 나는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잡았다. 뒤에서 보고 있던 둘째 녀석이 말했다.


 "엄마는 아직 로드용 자전거를 탈 수준이 안돼요. 사고 나요."


 "뭐라고? 이 녀석이 나를 무시하네."


 기분이 살짝 언짢았지만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아직 로드용 자전거 바퀴를 굴릴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따릉이만 타고 다닐 수는 없지. 언젠가는 나도 내 자전거를 사야 할 테고, 그러면 이 정도의 바퀴는 잘 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날이 올까?'


 나는 겁이 나서 그날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따릉이 학교(?)에 남아 있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당신도 이제 따릉이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며 나의 따릉이 학교 졸업을 앞당기려 했다.

 남편은 초보 라이더에게 맞는 자전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나의 의견을 물은 뒤 바로 자전거를 주문했다. 나도 꽤 빠르고 결단력이 있다는 말을 듣는데, 남편은 나보다 더 빠르다. 해야 할 일 앞에서는 단 일 초도 지체하는 법이 없다. 이런 남편이 존경스럽다.

 자전거를 주문하고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자전거가 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전거 인구수 급증으로 재고 부족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문 앞에서 자전거를 받아서 거실에 두었다.


 "우와, 크다!"


 자전거를 보자마자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첫마디다. 생각보다 커서 놀랬지만, 그래도 내 자전거다.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내 자전거다. 내 자전거를 보니 '따릉이 졸업'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이제 나도 라이더다.


 새로운 시작이다


 졸업과 입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졸업을 하면 우리는 어딘가로 들어간다(사후세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이생의 졸업 조차도 새로운 입학일 것이다.) 따릉이 졸업과 동시에 나는 자전거 학교에 입학한 셈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실제로 자전거 학교가 있나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자전거 학교는 제도권 내 학교가 아니고 일반적으로 라이더들이 밟는 코스를 의미한다.

 입학은 셀렘과 떨림을 동반한다. 설렘과 떨림으로 들뜬 마음이 안정되려면 낯선 환경, 새 친구와 친해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전거 세계 입문과 함께 만난 나의 새 친구는 자전거다. 만난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 가까이 하기에 아직은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다. 자전거와 나에게는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부러 자전거를 거실 한쪽 벽에 세워 두었다. 오며 가며 자주 보려고 말이다.

 평소 나를 잘 무시하는 둘째 녀석이 자기 자전거와 내 자전거를 비교하며 말했다.


 "엄마가 저 자전거를 탄다고요? 내 자전거도 못 타면서 내 거보다 조금 더 큰 저 자전거를 타겠다고요?"


 남편이 둘째 녀석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성인 여성은 누구나 탈 수 있는 자전거야. 엄마도 충분히 탈 수 있어."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나도 한 마디 보탰다.


 "그래, 연습하면 엄마도 탈 수 있어."


 그렇다. 연습하면 탈 수 있다. 나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맞아. 연습하면 탈 수 있어. 그러니까 겁내지 마. 서두르지 마.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는 거야"


일단 하는 거야


 자전거 학교 입학 둘째 날,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 핸들을 잡아봤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안장 높이를 내 키에 맞게 재조정했다. 안장 높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쪽 발을 거실 바닥에 디디고 한쪽 발로는 페달을 돌리며 작은 거실을 한 바퀴 돌아봤다. 그렇게 자전거와 나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도 내향인, 자전거도 나 닮아 내향인인가 보다.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토요일, 내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여전히 '공원 내 자전거 탑승 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 공원 옆에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을 구분해 놓은 넓은 길이 있어서 거기서 시승식을 했다.

 나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안장 위에 올라탔다. 자전거를 처음 탈 때처럼 중심을 못 잡고 흔들렸다.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안정감 있게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출발하기부터 시작해서 부드럽게 착지하기 까지,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부족한 점은 앞으로 연습을 통해 채워나가면 된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몇 미터라도 가 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엄두가 안 나는 큰 일은 작은 일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하기 싫어!"라고 아우성을 쳐도 무시하고 일단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자주 하다 보면 소극적이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오늘은 왜 안 해? 왜 이렇게 꾸물대는 거야! 빨리 하자"

  

 처음에는 내가 힘들게 끌고 갔지만, 익숙해지면 몸과 마음이 나를 목표지점으로 알아서, 세게 끌어당기게 된다. 나도 그랬다.

 

 자전거 바퀴가 무서웠지만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 보자'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사버렸다.


 '우와, 안장은 왜 이렇게 높고 바퀴는 왜 이렇게 크지' '내가 과연 탈 수 있을까?' 두려웠지만,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 보자'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깊이 생각하면 두렵기만 해서 그냥 했다. '까짓 거, 죽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그냥 했다.


 그렇게 했더니 어느새 나도 잘 타는 라이더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내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게 되었다. 아직은 자린이*지만 괜찮다. 초보자의 다른 이름은 미래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을 품고 무엇을 믿든 몸이 그것을 현실로 이룬다_나폴레온 힐, 1937

 

*자린이_자전거와 어린이의 합성어. 자전거 초보자를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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