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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섭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혜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섭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다가 창문을 끝까지 내렸다. 땀을 식히려는 게 아니라 멀어지는 안내원을 부를 기세였다. 혜리가 요섭을 말리려했으나 이미 한발 늦었다. 다가온 안내원에게 요섭이 말했다.
“저희도 동감입니다.”
“뭐가요?”
“이 도시에서 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죠.”
“그렇다면 먼저 차를 빼주세요.”
“차를 빼면 사람은 어디로 가야하나요?”
“정말 왜 이러세요? 저희도 힘들어요.”
“저희도 그래요. 정말 갈 데가 없어요.”
“일 년에 하루 하는 행사에요. 좀 도와주세요.”
“저희만 좀 세우면 안 될까요?”
안내원이 고개를 저었다. 요섭이 운전대에 축축한 얼굴을 기댔다. 혜리의 뜨거운 콧김이 그의 이마에 와 닿았다. 보다 못한 장인이 끼어들었는데 좀 옛날 방식이었다.
“아가씨 참 곱네. 우리만 어떻게...”
“아버지는 좀 가만 계세요.”
혜리가 말렸다. 안내원은 완강했다. 요섭이 결국 단념하고 변속기에 손을 얹는데 혜리가 비장하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요섭이 깜짝 놀라서 혜리를 돌아봤다.
“그래 밀어붙여.”
장인이 덩달아 가세했다. 요섭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차를 점점 전진시켰다. 안내원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옆으로 비켜났고 입구를 가로막았던 테이프가 나풀나풀 떨어져나갔다. 행사장 안으로 차가 들어서자 사람들은 행사 차량이거니 하면서 피했다. 요섭은 안내원과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차가 안 보이니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주차장이 차 대신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어 주차가 쉽지는 않았다.
드디어 요섭이 사람들 사이에 난 빈 공간을 발견했다. 그가 후진을 해 주차를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이 옆으로 슬슬 피했다. 마침내 그의 차가 네모 칸 하나를 차지하고 멈춰 섰다. 그가 시동을 끄자 일행이 약속이나 한 듯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맞은편에서 요가를 하며 몸을 구부리던 가족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옆에서 네일아트를 하던 여성은 손톱을 불며 관심을 보였다. 몇 칸 건너에서 장기판을 벌이던 영감들도 잠시 장기알을 내려놓았다.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나?” 혜리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우린 파킹... 했잖아.” 요섭이 얼버무렸다.
장인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요가 가족 중 꼬마가 일행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차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차 옆에서 걸음을 멈춘 꼬마가 트렁크에 실린 휠체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로 뭘 하려는 거예요?”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봤다. 파킹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시선은 자연스럽게 휠체어 주인에게 모아졌다. 장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꼬마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장인을 놓아주지 않았다. 장인이 입술을 핥았다. 뾰족한 수가 없어보였다. 요섭은 차를 다시 출발시켜야 할지 고민했다.
“뭐라도 해보세요.” 혜리가 말했다.
“하긴 뭘 해. 휠체어를 타라고 만들었지. 쇼 하라고 만들었냐.”
“그럼 타는 거라도 보여주세요. 아까 기가 막히게 올라탔잖아요.”
혜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섭이 휠체어를 꺼내 차 뒷문 쪽에 내려놓았다. 장인이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마침내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병원 침대에서 그랬듯이 한 손으로 차 시트를 짚고 휠체어로 훌쩍 뛰어넘어 갔다. 꼬마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꼬마는 기대가 컸다.
“그게 다에요?”
자존심이 상한 장인이 꼬마에게 되물었다.
“너는 뭘 하는데?”
꼬마는 장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팔과 다리를 길게 뻗었다. 요가 시범이었지만 작은 체구로 보여줄 수 있는 동작은 한계가 있었다. 꼬마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 기술을 이어가면서 줄곧 장인을 쳐다봤다. 장인의 표정이 점점 비장해졌다. 보다 못한 장인은 무슨 심산인지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갔다. 휠체어에 앉은 자세로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갈고 닦았던 휠체어 체조 실력을 선보였다. 꼬마는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장인을 따라 몸을 꼬물거렸다.
요섭도 삼매경에 빠져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혜리를 돌아봤다. 혜리는 요섭의 시선을 미처 느끼지 못했다. 요섭이 혜리에게 말을 건넸다.
“귀엽지?”
“...”
“왜 그래?”
혜리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요섭이 놀라서 팔을 뻗는 순간 혜리가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인을 지나친 혜리는 꼬마한테 달려갔다. 그러더니 별안간 꼬마의 몸을 터지도록 껴안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요가 부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요섭이 차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녀를 떼어내기 위해 여럿이 뒤엉켰다. 그녀가 꼬마와 너무 딱 붙어있어 다들 애를 먹었다. 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어떤 집단 요가의 한 형태인가 해서 궁금한 얼굴들이었다.
요섭은 겨우 혜리를 떼어놓고 요가 부부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장인은 휠체어에 앉아 먼 산만 바라봤다. 요섭이 혜리의 어깨를 감싸 안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장인은 벌떡 일어나 휠체어를 트렁크에 욱여넣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섭은 시동을 걸자마자 차를 급히 출발시켰다. 사람들이 옆으로 몸을 피했다. 차가 떠난 네모 칸에는 아이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요섭의 차는 행사장을 빠져나와 다시 찻길로 들어섰다. 퇴근시간이라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었었다.
“이제 어디로 가냐?” 장인이 말했다.
요섭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혜리는 잠자코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서쪽 구름에 걸쳐 있었다. 요섭이 앞차와의 간격을 줄이려고 페달을 밟았다. 장인이 흔들거리는 수박을 꼭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