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킹 데이

7

by 원초이

마트 주차장입구에 세워진 표시등들이 붉게 켜져 있었다. 주황색 혼잡 사인이 들어온 꼭대기 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만차였다. 거봐! 혜리의 음성이 차 안에 메아리쳤다. 그녀의 초조한 기운이 장인에게까지 전달됐는지 입술에 연신 침을 발랐다. 녹록치 않은 성격의 장인도 주차 스트레스는 느끼는 듯했다. 요섭은 그나마 꼭대기 층에 작은 희망을 걸고 어둡고 비좁은 나선형 여정에 올랐다. 하지만 앞뒤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의 행렬을 고려할 때 희망의 불씨는 점차 사그라졌다. 혜리는 진작 고개를 파묻었고 장인의 입술은 번들번들 윤이 났다. 주도면밀하게 창밖을 살피던 장인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만 가. 이 많은 차들이 꼭대기로 가면 어떻게 되겠어. 바보들. 우리는 여기로 가자구.”

“다들 여기 갔다가 자리가 없으니까 올라가는 거 아닐까요?”

“바보 같은 소리 마.”

일단 요섭은 장인을 믿어보기로 하고 운전대를 돌렸다. 주차 구역으로 들어서자 긴장감이 돌았다. 매의 눈으로 한 바퀴를 돌았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곳곳에 탈진한 비둘기의 눈을 한 운전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역시 줄에서 이탈할 때는 그만한 확신이 있어야한다고 요섭이 반성하는 순간 장인이 외쳤다. “저기!” 혜리가 벌떡 몸을 세웠다. 요섭은 앞뒤를 재지도 않고 장인의 손가락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광명과도 같이 텅 빈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이 푸른색이라 멈칫했지만 진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행복의 문. 하얀 갈매기와 함께 온갖 시름을 날려버리는 푸른 바다. 시민공원에 깔린 우레탄도 아마 같은 계열의 색상이었지. 요섭은 바다에 첨벙 뛰어들었다. 동시에 혜리의 고함이 들려왔다.

“안 돼. 여기는 아니야!”

하지만 차는 이미 푸른 바닥 위에 멈춰 섰다. 혜리는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요섭은 혜리를 일으키려다가 그녀의 뒤통수를 봤다. 착하게 생긴 뒤통수였다. 한 번도 그녀의 머리 뒤쪽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찡그리고 우울하고 고독했던 앞모습만 보고 그녀를 다 안다고 치부하며 살았다. 뒤통수는 아무 표정도 어떤 기분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단순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도 그 정도가 아닐까. 그런 그녀에게 조그만 공간 하나 못 만들어주며 쩔쩔매다니. 요섭이 혜리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장인은 민망하게 고개를 돌리며 혀를 쯧쯧거렸다. 혜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기는 장애인 자리라고요.”

“그게 나다.”

“당뇨환자가 장애인은 아니에요.”

“트렁크에 휠체어 안 보이냐?”

“저건 나중을 위한 거라면서요.”

“난 틀림없이 당뇨합병증이 걸릴거야. 벌써 발가락이 뻣뻣해.”

“아까 잘 걸었잖아요.”

“볼래? 내가 얼마나 못 걷는지?”

장인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문을 열었다. 쿵. 차문이 옆 차에 부딪혔다. 빈 차인 줄 알았던 옆 차의 창문이 쓱 내려갔다. 게다가 창문 너머 나타난 마스크는 고결한 귀부인형이었다. 살면서 절대 흥분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콕이네.”

얼굴이 벌게진 장인이 차문을 재빨리 닫았다. 하지만 검은 차 옆구리에 난 상처가 외면하기에는 너무 길고 뚜렷했다. 장인은 목을 움츠리고 요섭에게 빨리 차를 출발시키라는 눈짓을 했다. 요섭이 머뭇거리는 사이 혜리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귀부인과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는 흠집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비싼 차야? 그녀가 요섭의 귀에 대고 말했다. 요섭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귀부인이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인이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창문을 내렸다.

“뭐라고요?”

“이게 얼마짜리 차인지 아냐고요?”

“얼만데요.”

“똥차 몇 대는 사죠.”

“똥차라면... 이 차를 말하는 거요?”

“누가 그 차래요? 할아버지 귀가 먹으셨어요?”

입에 거품을 문 장인이 다시 문을 열려고 하자 혜리가 대신 나섰다.

“아줌마. 물어주면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귓병이 아니라 당뇨에요!”

더 이상 돌아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요섭이 차 밖으로 나갔다. 영업사원답게 귀부인에게 정중히 다가가더니 소곤소곤 합의에 들어갔다. 얼마 후 귀부인의 차 창문이 올라갔고 요섭은 차로 돌아왔다.

“얼마 달래냐?” 장인이 조급하게 물었다.

“백이요.”

“뭐? 다들 미쳤구나... 그럴 돈이 어딨어. 우리 같은 똥차 주인이.”

“장인어른.”

“왜?”

“퇴원하고 받으신 보증금 있어요. 휠체어 값 빼고 딱 맞아요.”

“뭐? 휠체어는 왜? 공짜로 준다더니... 미친 원장...”

그때 귀부인의 운전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양손에 봉투를 들고 마트 안에서 나타났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화를 안 받던 차주, 그 넥타이 청년이었다. 요섭과 혜리의 눈이 동시에 마주치면서 입이 벌어졌다. 넥타이가 귀부인을 싣고 엔진 소음도 없이 떠나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 역시 푸른색이었음을 알아챈 건 혜리였다.

“옆에도 장애인 구역이잖아?”

장인이 허어, 하고 뼈아픈 신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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