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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섭의 차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안내판에 있던 행사 때문인지 여느 때보다 차들과 사람들이 많았다. 시민공원은 상대적으로 한적해서 불공평해보였다. 공원에서 하는 행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행사가 어디서 벌어지는 것일까. 혜리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그녀가 느끼는 압박이 요섭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장인은 정신무장 중인지 다소 상기된 얼굴이었다. 요섭은 장기전을 대비하여 두 사람을 먼저 내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장인이 한사코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에 소유 심리가 더욱 발동하는 걸까. 뒤차가 쫓아오기에 요섭은 계속 차를 움직이면서 장인을 설득했다. 장인은 완고했다. 처음 입주하는 마당에 휠체어로 입성해서 몸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주위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멀쩡한 몸으로 시작해서 당뇨합병증으로 악화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었다.
요섭은 두 사람을 휠체어와 함께 내려주고 나서 주차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종종 혜리를 먼저 내려주곤 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주차 후에 혜리를 집이 아닌 시민공원에서 찾아냈던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분명히 혜리를 집 앞에 내려줬는데 집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녀를 찾아 마치 주차 공간을 찾듯이 아파트 단지를 헤매 다녔다. 빽빽이 들어찬 차들 사이에 숨어있든지 아니면 아예 차로 변해버렸다고 생각할 무렵 그는 먼발치에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황급히 공원으로 뛰어갔다. 혜리는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웬만해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자초지종을 들어본 결과 그 입장도 이해가 갔다. 혜리가 유모차에 손을 댔던 것이었다. 그들은 혜리가 여기저기 흩어진 유모차를 한군데로 모으는 것 같았다고 했다. 요섭은 해명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사과를 거듭했다. 집에 가는 길에 요섭은 혜리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단순했다. 바퀴가 굴러가면 어떡해. 유모차가 제자리에 있어야지.
요섭은 주차할 곳을 못 찾고 두리번거리다가 전방에 나타난 혜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혜리와 장인을 차에 태우고 휠체어를 트렁크에 얹듯이 넣었다. 끈으로 묶을 여유도 없거니와 떨어질 염려는 없는 좁은 길이었다. 이윽고 장인의 해명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102동 입구를 목표로 이중 주차된 차들 사이를 뚫어봤지만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없었다. 남이 안 볼 때 장인이 휠체어를 머리 위로 들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그 원인은 약해진 다리 힘 때문이라며 당뇨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다.
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휠체어가 덜그럭거리자 장인이 헛기침을 했다. 요섭은 일단 행사 푯말이 세워진 공간으로 차를 갖다 댔다. 이제 보니 테이프로 막아놓은 행사장 안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저 아까운 주차장에 사람들만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요섭은 이제 더 나아갈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행사안내원 행색을 한 여성이 다가오더니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신경이 곤두서는 소리였다. 요섭은 무거운 마음으로 창문을 내렸다.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차를 여기에 세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겠냐는 사전교육을 받은 듯했다. 요섭은 굴하지 않고 무슨 일이냐며 반문했다. 안내원이 유인물 한 장을 나눠줬다. 요섭이 종이를 받아들고는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