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킹 데이

5

by 원초이

멀리 요양병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건물 탓에 처음 온 방문객들은 쉽게 지나쳤다. 병원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었고 주변의 주차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병원 주변은 언제나 차들로 엉켜있었다. 요섭은 그 광경을 보기만 해도 혈압이 올랐고 저절로 옛 기억이 떠올랐다.

혜리가 임신 중일 때 요섭이 차를 어느 병원 입구에 세워놓은 적이 있었다. 그녀의 상태가 안 좋아서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고 병원에 들어가서도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의 상태가 호전됐을 때야 세워둔 차가 생각났다. 밖으로 나와 차로 가는데 누군가 다짜고짜 큰소리로 외쳤다. “야. 너 때문에 얼마나 난리가 난지 알아? 병원 입구에 차를 세워놓으면 환자가 죽으라는 거냐!” 요섭은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고 그럴 기력도 없는 상태였다. 다급한 환자보다 더 다급한 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곱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점에 의문이 생겼다. 누가 더 다급했을까. 혹시 아내가 유산을 하는 것보다 다급하지 않은 환자가 아니었을까. 감기거나 간단한 맹장염이었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큰소리칠 자격이 있었을까.

요섭은 코딱지만 한 병원 건물 주차장에 다행히 차를 댔다. 주차 관리인이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진땀을 뺄 뻔했다. 요섭은 한층 안정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갔다. 혜리가 장인의 병실로 가는 사이 요섭은 원장실로 향했다. 요섭이 원장실에 들어서자 컴퓨터 화면을 보던 원장이 의자를 빙그르르 돌렸다. 박철규의 보호자인지 이마에 써 붙인 것도 아닌데 원장은 요섭을 알아봤다. 그는 장인의 퇴원을 재고해보라고 요섭을 설득했다.

“환자분 당뇨가 심해져서 걱정입니다. 집에 가면 치료가 어려울 텐데요.”

“아내가 옆에서 잘...”

“여기서는 의무적으로 운동도 시킵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체조를 해요.”

요섭은 원장의 말이 와 닿지 않아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퇴원은 자유지만 입원은 그렇지 않아서, 그런 게 참 걱정입니다. 특히 4인실은 인기가 많아서 대기자가 줄을 섰어요.”

요섭은 인기가 많은 병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기자가 줄을 섰다는 말이 귀에 박혔다. 어떤 자리라도 줄을 선다는 것만으로도 놓치기 아까웠다. 살면서 한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줄을 설 수 없거나 긴 줄의 끝으로 갈 확률이 많았다.

“2인실은 좀 사치스럽고. 6인실은 불효스럽고. 뭐 그런 거죠. 그 중간에 4인실이라는 게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자식 된 입장에서는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요섭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장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는 영업사원의 자존심을 애써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과 상의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더니 원장이 네, 네, 하면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병실 안은 놀라운 속도로 짐정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요섭은 장인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면서 혜리를 향해 말했다.

“아직 정리하는 중이네?”

“정리 다 끝났어.”

혜리의 명료한 대답에 요섭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순간에 퇴원을 반대하면 어떤 말이 나올지 머리에 그려졌다. 마침 침대에 앉아있던 장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휠체어로 깡충 뛰어내렸다. 마치 날다람쥐가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해 사뿐히 안착하는 느낌이었다.

“그 짐 들고 나와.”

혜리의 말에 요섭은 짐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휠체어를 따라나섰다. 복도에서 마주친 간호사들이 작별인사를 했다. 요섭은 원장실에 들러 간단히 퇴원서류에 사인을 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원장은 별다른 말은 없었고 휠체어 값은 보증금에서 뺐다고만 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혜리 대신 요섭이 휠체어를 맡았다. 휠체어 덕분에 장인을 업지 않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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