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킹 데이

3

by 원초이

평일 대낮인데도 아파트 단지 안의 도로는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이중 주차할 자리도 꽉 찼는지 고난이도의 개구리 주차도 목격되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 근처에 못 보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요섭은 두 줄로 빽빽하게 늘어선 차들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반떼에 다다랐을 때 흐음,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어김없이 앞, 뒤, 옆을 -디귿자로- 다른 차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요섭은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전화할 차를 고르기 시작했다. 공간 인지적 추리능력이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봐도 옆 차가 없어야만 아반떼가 빠져나오는 모양새였다. 도대체 누가 남의 차 옆에다가 차를 세워둔 거야. 요섭은 옆 차의 유리로 가서 전화번호를 찾아봤다. 없었다. 조수석에도 없었고 뒤 유리에도 없었다. 요섭은 다시 아반떼로 가서는 진정 자신의 차가 맞는지 확인했다. 맞았다. 최악의 경우 차를 못 뺄 수도 있었다. 우선 혜리의 얼굴이 스쳐갔다. 차례로 장인의 얼굴, 그리고 휠체어. 휠체어를 고분고분 실어줄 택시는 없었다. 콜밴도 생각났지만 요금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요섭은 가장 가까운 105동으로 들어갔다. 안내방송을 부탁할 작정이었는데 경비가 자고 있었다. 할 수 없이 102동으로 되돌아갔다. 방송을 부탁했지만 경비가 거절했다. 주민 항의가 심하다며 이런 일로 방송을 하면 하루에 열두 번도 하겠네, 했다. 그 말끝에 경비는 연민인지 도전정신인지는 몰라도 문제의 현장을 동행하겠다고 했다. 경비가 순찰 중이라는 푯말을 내붙이는 동안 혜리가 병원에 갈 채비를 하고 나타났다. 셋은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그 동행 길은 서로 불편했다. 경비는 예전에 혜리의 자존심이 심하게 구겨졌던 현장을 목격한 산증인이기 때문이었다. 주차 공간 시비로 다투던 혜리가 땅바닥에 넘어진 사건이었다. 상대는 옆 동에 사는 가녀린 새댁이었다. 혼자 요양병원을 다녀오느라 부득이하게 차를 몰고 나갔던 혜리는 그 날 이후로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처절했지. 당시에 경비가 해준 한마디를 요섭은 기억했다. 게다가 논리적으로도 혜리가 패한 승부 같았다. 주차를 하려고 한참 기다렸다는 혜리의 말에 새댁은 몇 시간동안 아파트를 빙빙 돌았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했다.

경비는 아반떼의 앞차와 그 옆 차, 그 옆 차의 앞차를 빼면 되겠네, 하고 말했다. 전화 걸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 요섭도 수긍이 가는 의견이었다. 경비가 우쭐해하면서 되돌아갔다. 혜리는 근심을 떨치지 못한 얼굴이었다. 요섭은 보란 듯이 전화를 걸었고 세 통화에 모두 성공했다. 이윽고 차주들이 한 명씩 나타났다. 그들은 요섭과 눈도 안 마주치고 본인들의 차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그때마다 요섭이 혜리의 눈치를 봤다. 혜리는 말없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협소한 일방통행 길이어서 차들이 빠지는 동안 지나가는 차들은 멈춰서야 했다. 하지만 빈자리가 나는 걸 기대하는 건지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는 않았다.

요섭이 길에 서서 은퇴한 택시기사처럼 수신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반떼 옆 차에 누군가가 쏜살같이 들어갔다. 막 잠에서 깬 더벅머리에 넥타이를 대충 두른 청년이었다. 요섭이 항의라도 하려고 다가갔는데 차가 급출발하는 바람에 그가 거의 치일 뻔했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차를 보며 다른 차주들도 어이없는 얼굴이었다. 요섭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고 혜리에게도 승차를 재촉했다. 그가 차를 출발시키자마자 뒤에서 경적이 울려댔다. 움찔한 요섭이 백미러로 확인한 결과 그를 향한 소리가 아니었다.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남겨진 자들끼리의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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