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킹 데이

6

by 원초이

일행이 병원주차장에 당도했다. 차량들 사이로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틈을 겨우 발견했다. 혜리가 차에 짐을 싣는 동안 요섭은 장인을 어떻게 휠체어에서 차로 옮기나 고민했다. 의외로 고민은 쉽게 해결됐다. 장인이 꾸물꾸물 일어나더니 스스로 차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혜리도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장인이 휠체어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아무래도 다리 쪽에 심한 당뇨합병증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혜리와 요섭 둘 다 어안이 벙벙했다.

요섭은 곧 다른 문제에 당면했다. 휠체어가 뒷자리나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저런 시도도 여의치 않자 102동 경비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혜리는 바퀴가 너무 크다는 말을 반복하며 접히지도 않는 휠체어를 자꾸 접으려 들었다. 보다 못한 장인이 스페어타이어가 보관된 쪽에 고정용 끈이 있으니 휠체어를 묶으라고 했다. 요섭이 반신반의하며 트렁크를 뒤져보니 정말 끈이 있었다. 장인은 틀림없는 차 주인이었다. 휠체어는 트렁크가 반쯤 열린 상태에서 끈으로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지체된 시간만큼 주차비를 정산한 이후였다.

찻길에 들어서자 뒷자리의 장인은 목을 앞으로 길게 뺐다. 거의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위치와 다름없었다. 장인이 일장연설에 들어가자 요섭은 그의 구취를 느꼈다. 속도를 줄여라. 차가 들썩이면 끈이 풀려 트렁크가 열릴 수 있다. 서스펜션이 상한다. 오일 교환은 언제 했냐. 옛날 차는 자주 갈아줘야한다. 몇 킬로 뛰었냐고 물을 때는 계기판까지 장인의 목이 닿았다. 혜리가 더는 못 참겠다는 말투로, 배는 안 고프세요, 하며 끼어들었다. 장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동 세차는 코팅이 다 벗겨진다면서 손으로 차를 닦으라고 했다. 혜리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 차는 자동 세차만 해요! 아시겠어요?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손으로 하시면 되겠네요.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에 눈만 뜨면 다 차야! 차!”

장인이 혜리의 기세에 눌려 눈만 껌벅거렸다. 하지만 곧 원기를 되찾고 맞받아쳤다.

“그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왜 애는 안 낳는 거냐.”

하필 차가 신호등에 걸려 차 안이 그지없이 조용했다. 요섭이 라디오에 천천히 손을 갖다 대는데 혜리가 짧게 입을 열었다. “꺼!”

장인은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너는 니 엄마하고 똑같구나.”

“뭐가요.”

“기분파였지. 달리 말하면 성질이 개떡 같았고.”

“우리. 산 사람 얘기만 해요. 배 안 고프시냐고요.”

“점심 먹었다.”

“뭐라도 더 드세요. 집에 가면 먹을 것도 없어요.”

“그럼 수박이나 먹자.”

“단 거 그만 드세요!”

“뭐라도 먹으라며! 이러려고 날 집에 데려 가냐?”

“아버지는 지금 정신이 미쳐가고 있어요. 단거는 엄마가 죽도록 좋아했던 건데 왜 아버지까지 이러는 거예요?”

“너가 달콤한 맛을 모르는구나. 나도 니 엄마만 나무랐었지. 우리 부부는 너무 늦게 일심동체가 됐어.”

요섭은 섣불리 개입했다가 자신도 미쳐갈 것 같아 운전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수박이 됐든 호박이 됐든 일단 마트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주차장이 있는 대형마트였다. 혜리와 장인이 휴전에 들어갔는지 잠시나마 평화로웠다. 목적지에 가까워오자 아니나 다를까 혜리가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일 분마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당신 지금 마트 가는 거지... 지금 주차할 데가 있을까... 이제 연휴잖아... 보나마나 주차장 마다 만차 만차 표시 됐을걸... 근데 그 마트는 주차 칸이 너무 좁아. 슬라이딩 도어가 달린 차만 오라는 건가.”

요섭은 장인이 한마디 해주길 바랐지만 그는 이미 코를 골고 있었다. 사실 혜리가 전전긍긍할 때마다 요섭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장인 모르게 차를 팔아치울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혜리와 달리 요섭은 가장으로서 불안감을 감추는데 익숙할 뿐이었다. 그저, 주차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녀가 입을 다물어주길 바랐다.

“내가 알아서 주차 잘 할 테니까 걱정 마.”

“원래 운전 하는 사람보다 옆 사람이 더 마음 졸이는 거 몰라?”

“그럼 운전대를 잡든지!”

고함소리에 잠이 설깬 장인이 수박 화채에 설탕을 더 넣으라며 잠꼬대를 했다. 장인의 입에서 설탕 색깔의 거품이 부풀었다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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