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아니라 연장선이었다는 것
지난 3년간 출산을 하고 나는 많은 시도를 해봤다.
책도 많이 읽었고, 강연도 찾아 듣고, 노트에 생각도 정리해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조급해졌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내려다 보니 결국
단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은 절망감이 나를 덮쳐왔다.
그마저도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멈춰서 돌아보니
이 모든 시도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의 연장선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내가 정말 하려는 일은
결국 이 모든 시도들을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아직 포기한 게 아니라,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걸 너무 빨리 해내고 싶어 했다는 것이었다.
그 조급함이 나를 지치게 했고,
점점 더 공황의 골은 깊어졌다.
그렇게 나는 결국 하나를 정했다.
One thing. 단 하나.
책에서 말하던 그것처럼,
이번에는 진짜 하나만 밀고 나가보기로 했다.
이 모든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하나도 결심할 수 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예쁜 말로 위로받으며 자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풀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많았고,
늘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솔직히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진심을 다해 말했다.
“좀 도와줘. 나 혼자 너무 벅차고 힘들어.”
엄마는 결국 내가 부탁한 것들을 챙겨 억지로 오셨다,
그래서인지 함께 있는 동안에도 나는 자주 화가 났다.
F인 나와 T인 엄마는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의 말들은 결국은 믿지 못하겠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오후,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는 결국 참았던 감정들을 쏟아냈다.
어린 시절의 서운함,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상처들.
왜 나에게 그런 말로 상처를 주었는지,
왜 내 가능성을 틀에 가두려 했는지,
왜 “여자 인생 30 넘으면 늦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는지.
나는 울부짖으며 토해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원망의 화살은 결국 부모님을 향해 있었고,
내가 가장 바랐던 건 이해받는 감정이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다시 선택한 길, 이 하나만은 끝까지 가보자고.
내가 겪어온 모든 시행착오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는 반드시 증명하고 싶다.
마흔의 여자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피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이건 나를 향한 다짐이자,
어쩌면 부모님을 향한 작은 외침이었다.
"이번엔 진짜 해낼 거야."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방에 들어가 또 한참을 울었다.
괜한 말을 해서 상처를 드렸을까 마음이 쓰였지만,
어쩐지 속은 조금 시원해졌다.
부모님이 와주신 덕분에
나는 내 시작을 좀 더 단단히 준비할 수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신 뒤,
아쉬움이 크게 밀려왔지만
이번엔 정말 보여드리고 싶다.
엄마, 아빠, 나 이제 시작해요.
고맙고 미안해요. 그리고, 이번에는 꼭 피어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