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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다

영애, 준수, 소은 그리고 김밥

by 마음의 온도

톡. 톡.


눈을 감고 갈비뼈를 쇄골까지 끌어올리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그때였다.

무슨 소리지. 모아 온 숨이 흩어질까 가늘게 눈을 떠 출입문 쪽을 바라본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그림자가 비를 맞은 창문처럼 흐릿하게 흔들린다.

지나는 발소리인가 보다. 다시 눈을 감고, 천천히 가슴을 부풀리며 숨을 모은다.


톡. 톡. 톡톡톡.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가슴에 담았던 숨을 뱉어내며 손목의 시계를 본다.

9시 30분.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고개가 자동으로 창문을 향한다.

톡톡톡톡. 빗방울이었다.


보통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은 7시다. 언제부터인지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이 시간이면 눈이 열렸다.

예정된 일정이 있든 없든, 씻고 입고, 집을 나선다.


[나무 교실]에 들어서면 창문을 여는 대신, 밤새 차곡차곡 쌓인 나무 냄새 사이에 가만히 머문다.

적당히 그 냄새를 흡수했다고 느껴질 즈음, 창문을 활짝 연다.

그리고 30분 정도 나무 의자에 가부좌로 앉아 '숨 쉬기' 시간을 갖는다.

새로운 공기가 들어와야 텁텁해지지 않는다. 나무도 나도.

톡톡 떨어지던 빗방울이 갑자기 리듬을 바꾼다. 노크처럼 조심스러웠던 소리가 이내 후드득-- 쏟아진다.

오늘은 유난히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비가 들이칠까 폴딩도어를 닫으려다, 하늘에서 바닥으로 수직낙하하는 빗방울의 노선을 바라본다.

테라스를 비워두기 잘했어. 무언가 두었더라면 어쩔뻔했어.

비가 내려오다가 테이블에 부딪혀 멍이 들거나,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튄다면 얼마나 당황했을까.

장식용으로 둔 바구니에 비가 갇히기라도 한다면. 흘러가는 게 습성인 비가 낯선 공간에서 고여버리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니까.


소심하게 내리던 비가 용기를 얻은 듯 물줄기를 쏟아내고, 손목의 시곗바늘이 11과 12 사이의 보폭을 줄여갈 즈음, 출입문이 움직인다.

5분 전 준수 씨가 들어왔고, 뒤이어 소은 씨, 11시 정각이 되자 영애 씨 얼굴이 보인다.

세 사람은 마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의자를 찾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창가에 서서 인사를 건네던 승주가 커피메이커로 향하려는 찰나, 영애 씨가 부른다.


"저.. 잠시만요. 제가 상의도 없이, 사고를 좀 쳤어요."


여섯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영애 씨를 향한다.


"사고요? 빗길에 오시다가 무슨 일 있으셨어요?"

"그게 아니라.. 이거요."


영애 씨가 백팩을 열어 4단 도시락통을 꺼낸다. 그리고 조심스레 뚜껑을 잡은 손을 움직인다.

알록달록한 도시락이 그녀의 무릎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비가 오더라고요. 어렸을 때 소풍날 비가 오면 교실에서 김밥 먹던 거, 기억나시죠? 김밥도 먹고, 사이다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요. 저는 이상하게 화창한 날보다, 비 오는 날 교실에서 먹던 김밥이 더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상의도 없이 김밥을 싸왔어요."


김밥들이 가지런히 누워서 웃고 있다. 요즘 유행처럼 스테이크나 치킨이 들어간 화려한 김밥천국은 아니다.

단무지, 달걀, 당근, 오이, 햄이 고르게 감긴 '그 시절 김밥'이었다.

세 사람이 입술을 깨물며 승주의 눈치를 본다.


"너무 맛있겠어요. 어쩜 이렇게 예쁘게 만드셨어요. 괜찮으시면... 우리 먹고 할까요?"

"아침 안 먹고 왔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준수 씨의 너스레에 영애 씨가 웃는다.

영애 씨는 처음 보는 소은 자리로 도시락 한 칸을 밀어주며 배시시 웃는다.

"아침 안 먹고 왔죠?"


김밥을 하나씩 입에 문다. 눈동자를 눈썹까지 끌어올린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양볼 가득 김밥을 머금은 얼굴에 어린 시절의 표정이 스친다. 빗방울 소리가 박자를 맞춰 흐른다. 김밥을 먹는 속도와 빗소리가 어딘가 닮아 있다. 김밥을 먹는 방법이 원래 이랬던 것처럼.




오늘의 한마디는,

좋은 게 좋은 거다

역시나 시동이 빠른 영애 씨가 출발신호를 알린다.


"우리 시어머니 18번이에요. 아들 둘, 딸 넷, 육 남매의 맏며느리예요. 김장철이면 300 포기의 배추가 배달돼요. 네 명의 시누이 몫까지 포함해서요. 트럭으로 쏟아지는 배추를 보며 멍하니 있으면 시어머니가 늘 그러셨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힘들다고 투덜대면 남편도 한마디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안 그래?'"


준수 씨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나지막한 도자기 소리가 공기를 흔든다.


"저희 과장님도 그래요. 거래처에서 실수를 해도 늘 거래처 입장을 들어줍니다. 그들이 갖고 와야 하는 샘플을 놓쳐도, 웃으며 제가 대신 가져오라고 해요. 분명 거래처가 와야 하는 건데 제가 반대로 출장을 다녀와야 해요. 처음에는 거래처가 다녀오는 게 기본 아니냐고 했는데,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렇게 빡빡하냐'며. 오히려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승주의 시선이 조용히 소은 씨를 향한다. 소은 씨는 대답 대신 커피 잔을 입술에 댄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표면적으로 보면, 참 좋은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일 수 있고, 좋은 것과 좋은 것이 더해져 '더블로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딘가 걸린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인데, 언제부턴가, 좋은 게 =나쁜 것이 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일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쪽 어딘가가 찜찜해진다.


딱 보기에는 좋은 일,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좋음'의 경계에 있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일, 다소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일, 그러니 파고들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사람들이 이 말을 꺼내는 순간을 생각해 본다.

시시비비를 따지기엔 피곤할 때, 관계의 온도를 슬쩍 낮추고 싶을 때. 혹은 싸움 대신 침묵을 선택할 때.

부드럽게 들리지만, 이성의 언어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다. 관계의 언어이기도 하다.

관습적인 상황에 주어지는 이 말은 주로 관행상 '하면 좋은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따지지 말라, 빡빡하게 굴지 말라는 말이 꼬리처럼 붙어 다닌다.


어깨를 툭툭 치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웃지만, 그 웃음 뒤에는 늘 한쪽으로 기울진 무게가 있다.

그 무게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잃는다.

심플하고 편리한 한마디로, 복잡한 감정을 단정 짓고, 이해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은 대개 '좋은 사람'으로 포장된다.

약속이나 원칙보다 이해관계가 중심이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누이의 김장을 대신하는 영애 씨, 거래처의 실수를 덮어야 하는 준수 씨.

그들의 말을 곱씹다 보면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좋은 것'일까.


그 '좋음'의 주인은 늘 말하는 쪽이다.

말을 건넨 사람, 그 말로 이득을 보는 누군가.


김장을 내놓으며 생색을 내는 시어머니, 아무 수고 없이 김치를 얻어가는 시누이들.

혹은 허세를 부리듯 배려를 말하는 과장, 그리고 그 옆에서 무임승차하는 거래처.

그들에게 '좋은 게 좋은 거다'는 늘 '그들에게 좋은 것'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서로서로 좋은 일이잖아."


다정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은밀한 강요가 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그 불편함마저 '좋음'으로 포장한다.

그래서 이 말은, 가장 부드러운 모양의 '가스라이팅'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참 좋은 말이다. 누구나 어떤 일이든 좋게 해결되길 바라니까.

하지만 진짜로 '좋게 해결'되려면,

그 과정에도, 그 결과에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무게의 좋음'이 있어야 한다.

그 좋음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좋은 게 아니다.



한동안 카페에서 알바를 했던 준수 씨가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를 회상했다.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손님은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었다. 라떼를 주문했는데 주문한 건 아메리카노였다던가, 커피의 간이 안 맞는다며 두 잔이나 서비스 음료를 받았다. 그때마다 사장은 준수 씨에게 무조건 사과를 시켰고, 그때마다 입에 달았던 말이 '좋은 게 좋은 거'였다. 결국 권고사직의 순간에도 이게 '서로에게 좋은 거다'라고 했다.

영애 씨는 남편의 단골멘트를 소환했다. 가정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우리 사이에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말라'라고.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었다


분명한 건, 좋은 게 늘 좋은 건 아니었다. 좋음이라는 말속엔 누군가의 불편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일까.


"우리의 마음에 '저울' 하나씩 품고 있으면 어떨까요."

승주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퍼진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저울 위에 살며시 올려보기로 한다.

이 좋음은, 너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것일까.

저울의 눈금이 균형을 이루면, 그건 진짜 좋은 게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면, 그건 이미 '좋은 척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건 나한테는 좋은 건 아닌 것 같다고."


싸우자는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이건 나에게는 조금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혹시, 불편해서, 신경 쓰여서 참는 쉬운 길을 택하고 있는가.

그 길에 쌓이는 오해와 싫증을 또다시 참고 있는가.

가끔은 선을 긋 듯, 경계를 세우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은 사람을 지키기도, 숨기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 말 뒤엔 언제나 누군가의 체념이 숨어있다는 걸.


말은 내 마음의 온도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숨'이다.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차갑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좋은 게 좋은 거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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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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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비가 그치고 햇살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던 영애 씨에게 소은 씨가 다가와 소근거리 듯 말한다.


"김밥. 너무 좋았어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승주가 꼬리를 잡는다.

"저도요." 준수 씨도 어색한 미소를 보탠다.


영애 씨가 웃는다.

"그럼 오늘은 다 좋은 거네요. 나도 좋고, 여러분도 좋고, 이게 좋은 게 좋은 거죠."


그 말이 빗소리처럼 오래 머물렀다.

오늘은 정말 좋은 게 좋은 날이었다.

비도, 김밥도, 말도, 다 좋았다.


소은 씨의 얼굴에 잠깐 편안한 표정이 스친다.

마치 그 말이, 꼭 나쁜 말만은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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